Friday, December 16, 2011

털신 이야기

겨울이다.

우리 회사는 겨울에 살짝 추운 편이다. 건물 자체가 오래되어 단열 기능이 좋지 않은 데다가, 난방 역시 '시스템 에어컨' 인가 하는 것을 사용하는데, 위에서 뜨거운 공기를 불어대는 통에 얼굴은 후끈후끈 하고 목이 칼칼해져 와도 여전히 발은 시린 물건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살이 뒤룩 뒤룩 찐 덕분에 이전보다는 추위를 확실히 덜 탄다는 것.

아무리 살이 쪘어도 발이 시린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해 낸 것이 '털신'이었다. 과연 따뜻할까? 비싸진 않을까?

우연히 들른 마트에 마침 눈에 딱 들어오는 털신이 있었다. 가격은 9900원. 나름 인기 있는 제품이었는지, 사이즈가 없다. 내 발 사이즈보다 좀 작은 것만 남았다. 신어 보니, 그럭 저럭 신을 만 할 것 같았다. 많이 걸어 봐야 사무실 내 자리에서 화장실 까지 왕복하는 정도에 불과하니 별 상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과감히 구입했다.

첫째날. 신발을 신으니 확실히 발이 포근하고 따뜻했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의외의 부작용이 있었다. 정전기. 이전까지는 가끔 한 번쯤 빠직 했다면 이제는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한 번씩 벼락을 맞는 것 같다. 하루에 열 번 정도? 그러다 보니 저녁 쯤에는 노이로제가 생길 지경이 되었다. 뭔가에 손을 대야 할 때마다 공포감이 들었다. 어떡하나. 털신을 포기해야 하나.

둘째날. 그나마 충격이 덜한 방전 장소를 발견했다. 사무실의 화분. 그 나무에 손을 대서 방전이 발생하면, 다른 곳에 비해서 훨씬 충격이 적다. 올 때 갈 때 그 나무를 한 번씩 만져 준다. 빠지직 하는 느낌 대신 따닥 하는 정도지만 그래도 만질 때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도록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걔도 생물인데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오늘. 공기가 너무 건조해서 가습기를 트는 것이 어떻겠냐고 얘기했더니 옆자리 동료가 어디서 가습기를 가져 왔다. 기분이 좀 나아 지는 것 같다. 게다가 정전기도 없어졌다! 초음파 가습기를 만든 사람에게 노벨상이라도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덕분에 평화롭고 행복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한동안 괜찮은 것 같아서 잊을 만 하니 마치 약올리듯이 다시 한 번 빠직 하는 강렬한 충격이 왔다. 가습기로 해결이 안 되는 거였나? 그럼 어떡하지? 정전기 방지 스프레이 같은 것을 사용해야 하나. 그건 또 비싸지 않을까? 그 때 가습기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이 눈에 띄었다. 물이 다 떨어져서 멈춰 있었다. 가습기가 멈추자 마자 다시 정전기가 찾아온 건가?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가습기에 물을 한 가득 담아 놓고 촉촉하게 지내 봐야 할 것 같다.

발시린 것이 참을 만 할까, 아니면 정전기가 더 참을 만 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더 비싼 털신을 구입하는 방법도 있을 거고, 뭔가 방법이 있겠지.

이런 정도의 고민이 전부인 요즘의 일상에 감사한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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