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31, 2005

Elevator Action


1983년에 TAITO 라는 회사에서 Elevator Action 이라는 게임을 내 놓았었다. 스파이로 보이는 인물이 옥상을 통해 건물로 잠입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건물 안에서 뭔가를 훔쳐가지고 지하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차를 타고 달아나는 게임.

(이런 켸켸묵은 게임의 스크린 샷 한 장이 설마 저작권에 걸리기야 하겠냐마는, 절대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_-;)

이 작은 이미지에서 보다시피 해당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꽤 많다. 빨간 문은 뭔가 훔칠 것이 있는 문으로, 꼭 한 번씩 들러야만 한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바로 주인공이 탄 엘리베이터 아래쪽. 누군가가 엘리베이터에 깔리고 있는 이 장면이다. 이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안전장치가 그야말로 부실하기 짝이 없어서 건물 복도 한 가운데로 엘리베이터가 내려와, 그림에서처럼 지나가는 사람을 깔아 뭉개기도 하고, 엘리베이터에 아예 문짝 같은 것이 없어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려는 순간에 뛰어들어 타고 내리는 것도 가능하고, 엘리베이터가 지나다니지 않을 때 그리로 뛰어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심지어는 엘리베이터의 천정 위에 올라타는 것도 가능하다.

뭐 그때는 1983년.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옛날이니까 그러려니 하자. (물론, 당연히 그때도 그렇진 않았던 걸로 기억하지만......) 요즘에도 이런 곳이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게임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바로 내가 일하는 회사 건물이 이 비슷한 형편이다. (읽는 분들도 당연히 짐작하시겠지만 이 게임처럼 엉망이라면 당장에 누군가는 잡혀들어가서 꽤 오래 콩밥만 먹어야 할 터이니, 정말로 이정도는 아니다. 과장을 좀 했다.) 점심시간 등 사람이 많이 올라타는 시간이면 엘리베이터는 웬만한 롤러코스터 못지 않은 강렬한 [덜컹] 하는 충격과 함께 운행을 시작한다. 이럴 때면 엘리베이터에도 안전벨트라도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 된다.

얼마 전에는 엘리베이터 안에 갖혔다. 예의 그 요란한 [덜컹] 후에 엘리베이터 안의 상냥한 여자 - 매번 "5층입니다. 올라갑니다." 하는 바로 그 여자가 예의 그 상냥한 목소리로 엘리베이터가 고장났으니 운행을 중지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속에는 사람이 가득 차고 문은 닫아버린 채......

"괜찮아, 괜찮아. 여기 1층이야."

누군가 안심하려고 말을 꺼내자 바로 아는 게 병인 누군가가 되받는다.

"이 건물 지하 4층까지 있잖아. 그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죽기에 충분하다는 뜻일까? -_-; 내가 미쳐.

어떤 여자분이 그나마 분위기 누그러질 얘기를 한다.

"이런 데에는 멋있는 남자랑 단 둘이 갖혀야 하는 건데......"

주변에서 키득키득 소리.

난 그때 이미 갖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디에다가 소변을 봐야 할 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라, 멀지 않아 다들 쉬도 하고 싶을 테고, 응가도 하고 싶어질 텐데, 엘리베이터 안은 충분히 많은 사람이 복작대고 있어서 어딘가 엉덩이를 까내리고 응가를 할 자리를 만들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그 사이 누군가는 비상 구조 버튼을 눌러 관리실에 연락을 했고, 잠시 후 성질 급한 누군가는 다시 한 번 비상 구조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갖혀 있다는 사실을 잊지는 않았는지 재차 확인했다. 아마도 꼬박 꼬박 월급을 받을 만큼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이에 이런 위급한 상황을 잊지는 않았을 것이 분명했는데도......

참, 나는 그 상황에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게시판에서 읽었던, 엘리베이터에 갖혀서 비상 호출 버튼을 눌렀더니 또 다른 상냥한 아가씨가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국번이오니....." 로 시작하는 안내를 해 주더라는..... 물론 그런 상황이 걱정이 되진 않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핸드폰 개발 회사고, 지금 엘리베이터 안에 갖힌 사람들의 핸드폰을 다 꺼내 보면 틀림없이 한 상자 분량은 될 거고 그중에는 분명 통화 되는 것이 있긴 할 테니......

어쨌거나 절대로 평화롭지는 않았던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에 누군가가 지나치게 단순하다 못해 다소간 원시적인 분위기마저 풍기는 연장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젖혔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경악을 해야만 했다. 이 엘리베이터는 지상에서 10cm 가량 떠 있었던 것이다!

아까의 빅뱅과도 같은 [덜컹] 후에 이넘은 겨우 10cm 올라가다 멈췄구나.

그런데, 그 두꺼운 책 한 권 두께밖에 안되는 10cm 의 분위기는 정말로 대단했다. 선뜻 그 아래로 발을 내 디디기 힘들 만큼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 높이를 뛰어넘어 성큼성큼 떠나버리는 것이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도록 무서웠다.

마침 내가 저기를 건너는 순간에 엘리베이터가 뚝 떨어진다면 나는 문 사이에 끼어서 반토막이 나겠지? 아니, 순식간에 반토막이 나는 것은 오히려 행복하지. 사이에 일그러진 채로 끼여서 몇 시간동안이나 발버둥치다가 기어이 구조대원들까지 구경하고는 죽었다는 얘기도 적잖이 들은 것 같은데......

어쨌거나 나는 그 바벨탑의 높이와도 같은 10cm를 아무런 사고 없이 뛰어내려 살아남았고 그래서 이런 글을 여기에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제기랄, 다음번에 직장을 구할 때엔 냉방 잘 되나 확인하는 것 외에도 엘리베이터에 문제가 없나 꼭 확인해야겠다.

참, 맨 위에 잠깐 나왔던 Elevator Action 이라는 게임은 꽤나 성공했었다. 그래서 1994년에 Elevator Action Returns 라는 후속편이 제작되었는데, 후속편은 해적판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졸작이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 본 적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엘리베이터로 사람을 깔아뭉개는 것은 영화나 게임으로 족하니, 현실의 엘리베이터는 그저 조용히 안전하게 움직여 주기만을 바란다.

=^.^=

2 Comments:

Blogger WireX said...

왜 나는 사람들이 가득 들어간후 정원초과를 알리는 안내멘트 이후에 맨나중에 탄 직원을 향해 "너 내려" 라고 외쳤다는 사람밖에 생각이 안날까..
나도 다른 사람들 처럼 안전에 무감각 해졌나부다.
왜 아무도 기계가 하는 소리는 듣지를 않을까?
하긴 사람이 하는 소리도 안듣는 판이니..

23:31  
Blogger Wonil said...

사실 회사 옮긴 후 가장 안심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엘리베이터라는 말씀!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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