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07, 2006

어른들을 위한 놀이공원

5월 5일. 어린이날. 그리고 석가탄신일.

불행하게도 올해는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겹쳤다. 지난번에 썼던 글의 실제 공휴일 수가 더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우울하게 확인하고야 말았다.

어린이들은 다들 어린이임을 과시하기 위해서 부모들을 졸라 놀이공원으로 갔을 듯하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이날의 놀이공원은, 아무런 볼 것 없는 그저 미끄럼틀을 한 번 타기 위해서도 삼십 분은 족히 줄을 서야 하고, 어디에 가던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 이외의 것은 도저히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의 인간지옥이었다. 딱 한 번 그런 경험을 한 이후로는 다시는 어린이날에 놀이공원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은 듯하다.

올해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가면서 석가탄신일이라 사람이 많기는 하겠지만, 어린이날 덕분에 분산되어서 그렇게 많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고 은근히 기대를 좀 했었다. 하지만 웬걸, 기대는 저 멀리 산자락 끝에서 절로 가는 셔틀버스 타는 곳부터 무참히 깨어졌다. 거기서부터 한시간 가량 줄을 서야만 했던 것이다. -_-;

절. 조용하게 마음을 닦는다는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끝없도록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사람 많기로 유명한 명동이나 종로에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하다. 다만, 명동이나 종로에는 널린 것이 식당이고 차량이지만, 사진 속에 보이는 장소에서는 절에서 운영하는 식당 단 한 군데가 있을 뿐이고, 절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 단 한 종류의 교통수단이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절에서 제공하는 약간의 이벤트성 행사들에는 역시나 짧지 않은 줄이 늘어서 있곤 했다. 예를 들면, 무슨 바퀴 같은 것에다 소원을 빌고 한 바퀴 돌리는 행사라던지, 석가탄신일을 기념하여 아기부처상에다 물을 뿌려 주는 행사라던지 하는 곳에는 여지없이 끝을 볼 수 없는 긴 줄이 달라붙어 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그토록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 하셨건만, 다들 욕심 한 조각씩 붙여서 내건 등은 온 하늘을 뒤덮고도 모자라서 뭔가 걸어 놓을 수 있는 장소란 장소는 한 치도 빼놓지 않고 빼곡이 걸려 있는 듯했다.

종교보다는 과학을 신봉하는 나로서는 등에 이름을 적어서 걸어 놓는 것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절을 방문한 수만 명의 사람들은 기꺼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자기 욕심 한 조각을 이렇게 내걸고야 말았다. (물론 여기에 내 이름도 올라가 있다. 내가 아니라 어머니에 의해서. -_-;)

이 많은 인파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차기 대권 후보로 유력시 되고 있는 박근혜씨가 바로 이 절에 왔던 것이다. 나로서는 그런 유명인을 3미터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고, 내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 더 놀라운 일이었다. (뭔가 정치적, 법률적 문제에 휘말리기 싫어서 그 사진을 여기 싣지는 않는다.) 그녀는 TV에서 보던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았고 (당연한 건가? -_-;) 가까이서 보니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왠지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수많은 수행원과, 경호원과, 따라다니는 인파들을 이끌고 절을 한바퀴 휩쓸고 사라진 그녀는 나랑은 정치적인 견해가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나지만, 또, 내가 좋아하는 여인상과도 거의 공통점이 없지만,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사진을 소장할 가치는 있을 듯 해서 나도 열심히 셔터를 눌러 댔었고, 잘 나온 사진 한 장, 괜찮게 나온 사진 한 장, 그리고 알아보기 힘든 사진 몇 장을 만들어 냈다.

식당 앞에 늘어선 끝이 없어 보이는 긴 줄은 한순간에 아귀와 같은 식욕도 날려버릴 수 있었지만, 교통편은 정말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 절 차를 타고 돌아왔다. 혼자 갔었다면 아마도 걸어 내려오는 쪽을 택했을 듯.

놀이공원과 이 절은 닮은 점이 많다. 놀이공원에선 놀이기구를 제공하고, 절에선 종교 행사를 제공하는데, 둘 다 별도의 비용을 요구한다는 점. 놀이공원에선 연예인이 예체능 계열의 이벤트를 가끔씩 선보이는 것처럼 절에서는 정치인이 정치적인 이벤트를 선보인다는 점. 또, 양쪽 모두 참기 힘들 만큼 끔찍한 인파와 잡상인들. 굳이 차이점이라면 모여든 사람의 연령층 정도일까?

어쩌면 엄숙한 척 하는 각종 종교행사들은 그저 어른들을 위한 놀이공원의 한 종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날 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절에 갔던 것은 뭔가 부적절한 느낌이다. 어버이날이었으면 모를까......

=^.^=

2 Comments:

Blogger Taehan Kim(김태한) said...

오옷. 도선사를 다녀오신듯 하군요.
그런날 거길 다녀오셨다니, 그 엄청난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욕보셨습니다.

저도 종교가 뭐든 간에 자기 소원 빌게 만드는건 참 못마땅해요...

17:02  
Blogger WireX said...

새로 구입한 카메라가 돋보이는 블로그 였습니다.ㅎㅎ
과학 신봉자라...
그것 보다는 진리 또는 설명이 가능한것을 신봉한다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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