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ugust 21, 2007

새로운 도시

몇 년간 살던 성남을 떠났다.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여러 가지 면에서 살기 좋은 곳이었다. 일단 무엇보다 교통이 편하다. 시외버스, 시내버스, 지하철, 공항버스 등등. 가까이에 모란 장이 있는 것도 좋은 점 중에 하나였다. 멀지 않은 곳에 성남시 최대의 번화가인 야탑, 서현이 있고 탄천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도 매력적이다. 마지막으로, 항상 사람들이 북적이는 활기 넘치는 지역.

이 마지막이 가끔은 문제였다. 좁은 골목길은 언제나 차들로 빽빽하고, 거리에는 꼭 장날이 아니어도 온갖 잡상인이 득실거리고, 앞서 쓴 적도 있는 바락 바락 악을 써 대는 차떼기 장사꾼 역시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아서 평일에도 재수 없는 날은 새벽부터 잠을 설쳐야 하고, 휴일에 달콤한 늦잠은 꼭 두어 번 씩은 방해당하곤 했다.

한번은 아침 일곱 시부터 잡상인이 떠들어 대서 너무 화가 나 경찰에 전화를 했다. 내가 일어나기로 한 시간보다 반 시간이나 한 시간 남짓 일찍 타의에 의해 잠에서 깨워지면 무척 짜증이 나는 법이라, 경찰에다 하소연을 했다. 이 사악한 잡상인이 새벽부터 사람 잠 못자게 시끄럽게 군다고.

"지금이 새벽이예요?"

경찰의 퉁명스럽고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던진 대답이었다. 이넘의 나라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들만 국민이고 나머지는 머리수 채우는 떨거지냐, 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도 누구 못지 않게 세금도 많이 내고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등 남부럽지 않게 낸다 등등의 얘기들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꾹 눌러 참고, 겨우 꺼낸 얘기는 이거였다.

"채권추심도 9시 이전엔 못하게 돼 있잖아요."

"뭐라구요?"

내 가 경찰에게 채권추심에 대해 한 설명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몽사몽에 짜증이 섞여서 '경찰도 따라할 수 있는 이해하기 쉬운 경제학 교실'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겠지만, 경찰은 허허 웃으며 납득하는 척이라도 해 줬고, 경찰이 오기 전에 잡상인은 사라져 주긴 했다. 하지만 내 단잠도 사라졌고 무더위와 단짝인 왕짜증만 내게 남아 버렸다.

에휴~ 여기서 살 날도 며칠 안남았으니 그냥 참고 말자.

잡상인이 많이 많이 싫고, 귀찮고, 짜증나고, 화도 났지만, 그 근처가 재개발이 임박했다는 정체불명의 소문에도 불구하고 성남을 떠나기로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좀도둑.

한 번은 내가 밤동안에 다용도실의 창문으로 도둑이 들었다. 살금살금 내 방에 들어와 잠자고 있는 내 머리맡의 지갑에서 현금만 쏙 빼서 사라졌다. 창틀에 옹기종기 놓여 있던 세제들이 전부 세탁기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아 도둑이 그리로 왔다 갔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금전적 피해보다는 정신적 피해가 막심했다.

당장 방범창을 해 달았다. 그러면 뭘해. 이번에 찾아온 도둑은 대낮에 집이 빈 틈을 타 쇠톱으로 방범창을 썰어내고 들어와서 현관 체인을 안으로 잠가버리고 온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고는 사라졌다. 그 잠긴 문을 여는 데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든 것은 물론이고 아예 그 집에 대해서 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새 집. 교통 약간 불편하고, 주변에 번화가나 상가 찾기 힘들고. 하지만 산책로는 좀 더 멋지다. 공기도 좋다. 잡상인 소리가 나는 대신 자동차 소리가 나는 대로변인 것이 좀 아쉽지만, 그래서 멋진 경치를 볼 수도 있고, 창문만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고......


이게 내 방 창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뭔가를 얻으면 뭔가를 잃고, 무언가와 헤어지고, 또 다른 무언가를 만나고, 아직도 그런 일들에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이제 잡상인과 좀도둑의 도시 성남과는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