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07, 2007

버스 vs. 지하철

전에 살던 동네에선 직장까지의 주된 교통수단이 지하철이었다. 딱히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아침에 집을 나서,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고,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 직장까지 걸어가고......

새로 이사한 이 동네엔 지하철이 없다. 2009년 개통 예정인지, 착공 예정인지 그 비슷한 소문만 있을 뿐이다. (아마도 지하철보다 화장터가 먼저 생기지 싶다. -_-;) 대신 버스는 아주 풍요로울 만큼 많이 있다.

여기선 출근을 하려면 일단 버스를 타야 한다. 아무 버스나 타면 천호동, 잠실, 강변 세 군데 중의 한 군데로 간다. 개중에 회사 근처까지 가는 것이 딱 하나 있긴 한데, 잠실에서 삼성동까지 지하철로 10분 남짓할 길이 출근시간엔 30분에서 한시간까지도 걸릴 수 있어서, 어차피 잠실에서 내린다.

지하철을 주로 타다가 버스로 바꾸게 되니 그 둘의 차이가 너무나 크게 눈에 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려는 것이 이번 글의 목적이다.

1. 독서
지하철에선 책을 읽을 수 있다. 꼭 손잡이를 붙잡지 않아도 서 있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고, 조명도 환하다. 그래서 항상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버스에선 그게 안된다. 일단 자리에 앉지 못하면 한시라도 손잡이를 놓아선 안된다. 운행중인 버스의 움직임은 웬만한 롤러코스터와 비슷한 수준이다. 어떤 버스는 45도 경사길에서도 드리프트 턴을 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버스를 많이 탄 사람은 믿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자리에 앉더라도 책을 읽으면 쉽게 멀미가 난다. 나만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버스에선 신문을 읽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2. 잡상인 내지는 또라이
지하철엔 잡상인이 참 많다. 대형할인마트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희귀한 공산품들을 지하철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하기까지 하다. 단, 품질은 절대로 보증하지 못한다. 잡상인 못지 않게 신경 거슬리는 걸인들도 있다. 장님 흉내 내는 아저씨, 일부러 신발을 꺾어 신고 다리를 저는 젊은이, 무슨무슨 단체에서 나왔다는 학생 등등. 그런 사람들, 지하철 문만 나서면 펄펄 날고, 지하철 역 바깥으로 나가면 그렌다이져(-_-;) 타고 퇴근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가끔은 정말 어디가 고장난 건지 벗겨서 검사해 보고 싶은 충동도 느낀다. 마지막으로 또라이. 앞의 두 사람들이 내 주머니 속의 돈 몇 푼을 노리는 것과는 다르게, 내 영혼을 내놓으라는 인종들이다. 자기네는 벌써 예수에게 영혼을 팔아먹었더니 너무 좋다나. 그런데 그들의 퀭하니 풀렸거나, 아니면 광기로 번득이는 눈동자를 보면 도무지 행복이나 영적인 평화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없다. 이들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럽고 무례하고 구제불능이며, 가끔은 스스로 옷을 홀랑 벗어던져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까지 한다.
버스에는 잡상인이나 걸인, 예수쟁이가 타는 일이 훨씬 적다. 더 많이 흔들리는 것이 그 이유일 수도 있겠고, 더 적은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고, 운전기사가 쫓아낼 수 있는 것도 한가지 이유일 수 있겠다. - 지하철에서 소란 피웠다고 운전기사가 달려와 쫓아냈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버스 얘기는 가끔 들었다.

3. 방송
지하철은 안내방송을 꼬박꼬박 한다. 요즘은 방송에 광고를 한두 마디씩 섞는 것이 추세다. 은근히 짜증스럽다. 버스도 요즘은 예전에 비하면 정말 안내방송 잘 한다. 하지만 아직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훨씬 자극적인 광고를 넣는다. 안경점, 성형수술, 결혼식장 등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최악의 경우는 뽕짝방송이다. 연예인 두엇이 나와서 시시껄렁한 농짓거리 주고받다가 가수를 불러내 뽕짝을 틀어주는 그런 방송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어서 듣고 싶지 않지만, 버스란 세계 안에서 절대 권력자에 가까운 운전기사가 큰 소리로 틀어 대면 방법이 없다. 게다가 초행길인데 안내방송마저 생략하고 뽕짝거리기 시작하면 일부러라도 바닥에 토해주고 싶은 느낌까지 든다.
지금까지 지하철에서 안내방송 대신 뽕짝을 틀어주는 경우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4. 다른 손님
지하철에서 운 좋게 자리에 앉으면, 지하철 좌석의 구조상 다른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앉을 확률이 꽤나 높다. 5/7 정도의 확률이니... 그때, 두 명중 한 명 이상이 이어폰을 끼고 엄청나게 큰 소리로 음악 같은 것을 듣고 있을 확률 역시.... 적지 않다. -_-; 가뜩이나 피곤한데 이런 사람이 옆에 앉으면, 나이트메어 라는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긴 송곳으로 귀를 뚫어 주고 싶다. 한쪽 귀로 넣어서 반대쪽 귀로 나오게 하고, 마치 그릇이라도 닦듯이 마구 쑤셔대는 그런 것 말이다.
불행하게도 굳이 자리에 앉지 않더라도 주변에 쩌렁 쩌렁 울리는 소리로 뭔가를 듣는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말 재수 없어서 그런 사람 두엇이 내 주변에 동시에 존재하면, 원치 않는 스테레오 서라운드 소음을 듣게 된다. 이럴 때마다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이상하게도 버스에는 저런 부류의 사람은 적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내 편견일 지도 모른다. 대신 다른 부류의 진상들이 존재한다. 떠드는 사람.
한번은 등산객 차림의 아저씨 둘이 타서는 앞뒤로 앉아서 쉬지 않고 떠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도대체 뭔 남자들이 저렇게 떠든담. 삐익을 떼 버리라고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어찌나 큰 소리로 떠드는지 안내방송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바로 그 다음날, 웬 여학생 셋이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수다의 지존은 자기네들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아저씨들 떠드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량이었다. 안내방송은 하는지 안하는지도 느낄 수 없고, 나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잊어버릴 듯한 엄청난 경험이었다. -_-;

이런 저런 것을 고려했을때, 개인적으로는 버스보다 지하철이 훨씬 좋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 아침 저녁으로 30분씩 독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아침 저녁으로 사회에 분노하는 시간, 우리나라가 후진국임을 새삼 느끼는 시간을 갖거나, 기껏 초월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덕분에 Kitty's Study 블로그에는 언제 새 글을 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_-;)

가끔 차를 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서 주차장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 생각은 확 날아간다. 우리나라에선 "여유있는 주차공간" 이란 말은 광고 문구에서나 존재하는 허구일 뿐이다.

우리 동네에 지하철 생길 때까지 내가 살 수 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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