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November 11, 2009

내게 진실을 말해줘!

얼마전 부터 지하철은 온통 '우측보행' 포스터로 도배가 되어 있다. 갖가지 공감되지 않는 이유를 들먹이며 홍보를 하고는 있지만, 나는 30년 넘게 '좌측통행'이 몸에 밴 사람이라 그런지 불편하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지하철이 보여준 엽기(?)홍보들은 이번 조치를 의심하게 하기 충분하다.

맨 먼저 생각나는 것은 지하철 만보걷기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만보 걷는 것이 건강에 좋다나, 뭐 그런 얘기였던 것 같다. 하미잔 내 느낌엔, 지하철 환승시 불편하다는 고객의 소리를 씹기 위해 아무렇게나 내뱉은 이야기 아니었나 싶다. 참고로 종로 3가 전철역에서 5호선-1호선 환승시 걷는 양은 거의 버스 한정거장 수준이다. 어딘가의 역은 갈아타려면 남산 올라가는 수준으로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다. 그냥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나는 그들에게 꼭 얘기해 주고 싶었다. '나, 헬스하려고 지하철 타는거 아니거든.'

그 다음엔 에스컬레이터다. 처음엔 대충 탔었다. 장난을 하지 말라는 정도의 안내만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왼쪽은 바쁜 사람을 위해 비워 두고 오른쪽으로 타라는 강요가 시작되었다. 이 시도는 좋았던 것 같다. 실제로 선진국은 그렇게 하고 있다고도 하고. 내 경험상 미국에서도 공항 등에서 무빙워크에선 walk-left stand-right 비슷한 안내를 본 것도 같다.

시간이 지나서 이게 어느 정도 정착이 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항상 왼쪽에는 사람들이 걷고, 오른쪽에 서 있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텐데, 한가한 전철역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거다. 왼쪽은 비어 있고, 사람들은 다 오른쪽에 서 있는 거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가 비정상적으로 불균형하게 마모되었단다. 여기서 지하철측은 엽기행각을 벌였다. 애써 정착시킨, '바쁜 사람을 위해 왼쪽을 비워두는' 좋은 습관을 버리라고 종용하기 시작한 거다. 다소 민망한 동영상 까지 뿌려대며, 에스컬레이터에서 걷는 것은 사고를 유발한다는 식의, 그러니까 두 줄로 얌전히 서서 가라는 홍보를 해 댄 것이다. '그럼, 니네들땜에 사고 당한 사람들한테 사과는 했니?' 라고 묻고 싶었지만 괜히 병림픽이 되는 것 같아서 참았다.

그러던 참에 이번에 우측보행의 대대적인 홍보가 전개되었다. 세계인의 보행습관 이라는 어이없는 문구도 우습지만, 우측보행시 보행 효율이 엄청나게 개선된다는 엽기는 또 뭥미. 게다가 내 나이의 사람들은 대부분 '국민학교' 다닐 때 이런 노래를 배우며 자랐다. '사람들은 왼쪽길, 차나 짐은 오른길. 이쪽 저쪽 잘 보고 길을 건너갑시다.' 또, 주번이니 뭐니 만들어서 학교 내의 복도에서 좌측통행을 잘 하고 있나 학생들끼리 감시하는 제도도 있었다. 그 당시도 뭔가 이상하고 말이 안된다 싶었지만, 어느 순간 뒤집어서 우측보행을 하라고? 내가 지들이 키우는 돼지쯤 되는 줄 아나?

내 생각에 이건 정부 고위층과 연줄이 닿은 스티커 인쇄업자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서 뭐든 스티커 잔뜩 붙일 이벤트를 만들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다. 며칠이나 계속될 지도 의문이고......

지하철은 이쯤 씹었으면 잠깐 제쳐 두자.

국민학교 다닐 때엔 이런 표어를 들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중학교땐 이렇게 바뀌었던 것 같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고등학교때 쯤엔 급기야 이렇게 되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그 후로 인구가 줄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건만, 지금은 좀 더 많이 낳자고 난리들이다. 고작 십여년 전에는 하나씩만 낳아도 넘쳐나던 애들이 왜 갑자기 모자라다는 건지, 도대체 아무도 설명은 없이 그냥 닥치고 낳으란다. 심지어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동생입니다' 라는 글까지 지하철에서 보게 된다. '우리는 니들이 키우는 돼지가 아냐' 라고 악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다.

나는 별로 느끼지 못했던 건데, 지인이 알려준 이야기가 있다. 어린 시절엔 그토록 혼식/분식을 장려하더니, 어느 순간 쌀 소비가 준다고 슬그머니 사라졌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생각이 났다.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에 도시락 검사를 해서 흰 쌀밥을 싸온 아이들은 혼나던 기억. 그와 더불어 묘하게 겹쳐지는 북한 관련된 '이밥에 고깃국' 레퍼토리. 순진무구했던 나는, 정말로 흰 쌀밥을 먹으면 성인병으로 죽는 줄 알았던 것 같다. 도시락 때문에 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쟤들은 고혈압, 당뇨병, 심장마비 같은 게 무섭지도 않나' 하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누구도 건강을 위해서 흰 쌀밥 대신 보리, 콩, 조 등을 섞어 먹으라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병원 환자식도 대부분 흰 쌀밥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어린 학생들을 들볶았을까?

국가에선 국민을 이리 저리 마음대로 몰 수 있는가축 취급 하지 말고 제발 일관성 있는 태도를 취해 줬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안하게도 이미 늦었다. 정부가 뭐라 하건 판단은 내가 한다. 조금도 믿지 못하겠다. 이런 나라에 자식을 낳아 놓으면 평생 미안한 느낌일 것 같다. 닥치고 낳으라고 하기 전에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이라도 좀 보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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