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28, 2006

M사에서의 저녁식사

일요일이었지만 출근을 해야 했다.

저녁식사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기분전환도 할 겸 세계적인 대기업인 M 사에 잠깐 들렀다. (움.... 이렇게 써 놓으니 정말 뭔가 있어 보이는군... ^^;) 역시 대기업답게, 직원은 예약도 없이 찾아간 나한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넨다.

"주문하시겠어요?"

혼자 찾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다는 점이 매력 중의 하나인 이곳. 세계적인 패스트푸드점 M사. 나는 메뉴판에 보이는 음식중 가장 야채가 많아 보이는, 그래서 칼로리가 적을 것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무슨무슨 폴더란다. (나도 모르게 윈도우의 탐색기가 생각났다. -_-;)

"잠깐 기다리셔야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변함없이 밝은 미소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건네는 여직원이 내게 관심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할 만큼 멍청하진 않지만, 음식 왜 이렇게 안나오냐고 항의하기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일언 반구 언급도 없는 아주머니들과 대면하는 것보단 기분이 좋다. (결코 종업원이 젊고 예쁜 여자여서가 아니다.)

내가 주문한 무슨무슨 폴더가 준비되는 몇 분동안, 정신없이 음료를 준비하고, 감자튀김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주문을 받는 등, 그녀가 전혀 내게 관심 따위는 없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그래 봤자 준비된 음식이 나오면 그녀는 다시 내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맛있게 드세요' 하고 인사를 건넬 거고 난 다시 착각에..... 아니, 난 멍청하지 않으니 착각 같은 건 애시당초 하지 않았었지. ㅋㅋㅋ

조그맣게 포장된 케첩을 음료 뚜껑에 부으면서, 가끔씩은 다른 사람은 도대체 이 케첩을 어디에 덜어 먹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데 별로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 그냥 감자튀김 껍데기에 덜어 먹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미국의 어떤 지역에선 케첩용 작은 종이컵이 따로 있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게 낭비였을까?

무슨무슨 폴더를 맛있게 뜯어 먹고 - 속에는 닭살이 들어 있었다 - 감자튀김도 하나 남김 없이 다 주워 먹고, 음료까지 남김없이 쪼옥 빨아 먹고 나서 얼음을 아작아작 씹다가 우연히 접시 안에 놓인 종이에 슬쩍 눈길이 갔다. 읽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깨알만한 글씨로 각 제품의 칼로리 및 각종 영양소 함량이 적혀 있었다.

오, 그래, 이거야. 내가 그 유명한 Big M 을 먹었을 때보다 몇 칼로리나 덜 먹은 건지 한 번 확인해 보자. 이거 닭 몇 조각 들어 있긴 하지만, 어쩐지 풀만 잔뜩 들어서 왠지 배가 고픈 것도 같은데......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주범이라고 하도 공격을 받더니 아예 기아체험 메뉴를 만들고 있는 거 아냐?

Big M: 520. 무슨무슨폴더: 540.

허걱~

내가 먹은 쥐랄맞은 무슨무슨폴더는 M사가 제공하는 각종 메뉴 중에서 가장 높은 칼로리를 자랑하고 있었다. T.T OTL

웰빙은 무슨 웰빙. 걍 Big M 쳐먹고 배라도 부를걸.

지금 내 뱃속엔 뭔가 사기를 당한 듯한 허전함과, 두 끼 분량의 칼로리를 한 큐에 채워 넣은 거북함이 공존하고 있다. 몇 시간 뒤면 허전함과 배고픔이 대세가 되리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 더 서럽다.

=^.^=

Sunday, May 21, 2006

예쁘면 다야?

지난번에 도선사에서 우연히 목격한 정치인.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나와 생각이 무척 다르고, 여성으로서의 매력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지.)

지인에게 도선사에서 그녀를 보았다는 얘기를 했다.

"예쁘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지조차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 질문을 받기 전에는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예쁜지 아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위에 여성으로서의 매력에 관해 언급한 것은 확실히 이 질문을 듣고 나서 곰곰이 다시 생각한 결과이다.)

이 친구,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많이 외롭다고 하더니 드디어 정신세계가 붕괴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미안하다. 진심이다. -_-;)

도대체 왜 그러냐, 그런 질문을 할 상대가 아니쟎냐 몇마디 더 나누다가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여자는 무조건 미모야."

적어도 나는 그녀가 현재의 그 위치에 자리잡는데 그녀의 미모(?)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다. 또한, 미모가 필요한 자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Human 이라는 특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외양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그 얼마 후, 직장 동료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데, 마침 내 앞자리에 여직원 두 명이 앉았다. 나는 그때의 정신적인 충격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볼까 해서 말을 꺼냈다.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정치인의 이름을 듣고 대뜸 '예쁘냐'는 질문부터 꺼내는 남자에 대해서 보통 여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 정치인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도...... 그래서 처음부터 얘기하기로 했다.

"얼마 전에 도선사에 갔다가 박근혜씨를 3m 거리에서 봤어요."

"예뻐요?"

"......"

나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_-;

지금이라도 전 재산을 다 털어 내 외모에 투자해야 하는 걸까?

=^.^=

Sunday, May 07, 2006

어른들을 위한 놀이공원

5월 5일. 어린이날. 그리고 석가탄신일.

불행하게도 올해는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겹쳤다. 지난번에 썼던 글의 실제 공휴일 수가 더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이렇게 우울하게 확인하고야 말았다.

어린이들은 다들 어린이임을 과시하기 위해서 부모들을 졸라 놀이공원으로 갔을 듯하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이날의 놀이공원은, 아무런 볼 것 없는 그저 미끄럼틀을 한 번 타기 위해서도 삼십 분은 족히 줄을 서야 하고, 어디에 가던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람 이외의 것은 도저히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의 인간지옥이었다. 딱 한 번 그런 경험을 한 이후로는 다시는 어린이날에 놀이공원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은 듯하다.

올해 어머니를 모시고 절에 가면서 석가탄신일이라 사람이 많기는 하겠지만, 어린이날 덕분에 분산되어서 그렇게 많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고 은근히 기대를 좀 했었다. 하지만 웬걸, 기대는 저 멀리 산자락 끝에서 절로 가는 셔틀버스 타는 곳부터 무참히 깨어졌다. 거기서부터 한시간 가량 줄을 서야만 했던 것이다. -_-;

절. 조용하게 마음을 닦는다는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끝없도록 많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사람 많기로 유명한 명동이나 종로에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하다. 다만, 명동이나 종로에는 널린 것이 식당이고 차량이지만, 사진 속에 보이는 장소에서는 절에서 운영하는 식당 단 한 군데가 있을 뿐이고, 절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 단 한 종류의 교통수단이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절에서 제공하는 약간의 이벤트성 행사들에는 역시나 짧지 않은 줄이 늘어서 있곤 했다. 예를 들면, 무슨 바퀴 같은 것에다 소원을 빌고 한 바퀴 돌리는 행사라던지, 석가탄신일을 기념하여 아기부처상에다 물을 뿌려 주는 행사라던지 하는 곳에는 여지없이 끝을 볼 수 없는 긴 줄이 달라붙어 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그토록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 하셨건만, 다들 욕심 한 조각씩 붙여서 내건 등은 온 하늘을 뒤덮고도 모자라서 뭔가 걸어 놓을 수 있는 장소란 장소는 한 치도 빼놓지 않고 빼곡이 걸려 있는 듯했다.

종교보다는 과학을 신봉하는 나로서는 등에 이름을 적어서 걸어 놓는 것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절을 방문한 수만 명의 사람들은 기꺼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자기 욕심 한 조각을 이렇게 내걸고야 말았다. (물론 여기에 내 이름도 올라가 있다. 내가 아니라 어머니에 의해서. -_-;)

이 많은 인파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차기 대권 후보로 유력시 되고 있는 박근혜씨가 바로 이 절에 왔던 것이다. 나로서는 그런 유명인을 3미터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고, 내 카메라에 담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더욱 더 놀라운 일이었다. (뭔가 정치적, 법률적 문제에 휘말리기 싫어서 그 사진을 여기 싣지는 않는다.) 그녀는 TV에서 보던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았고 (당연한 건가? -_-;) 가까이서 보니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왠지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수많은 수행원과, 경호원과, 따라다니는 인파들을 이끌고 절을 한바퀴 휩쓸고 사라진 그녀는 나랑은 정치적인 견해가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나지만, 또, 내가 좋아하는 여인상과도 거의 공통점이 없지만,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사진을 소장할 가치는 있을 듯 해서 나도 열심히 셔터를 눌러 댔었고, 잘 나온 사진 한 장, 괜찮게 나온 사진 한 장, 그리고 알아보기 힘든 사진 몇 장을 만들어 냈다.

식당 앞에 늘어선 끝이 없어 보이는 긴 줄은 한순간에 아귀와 같은 식욕도 날려버릴 수 있었지만, 교통편은 정말 전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 절 차를 타고 돌아왔다. 혼자 갔었다면 아마도 걸어 내려오는 쪽을 택했을 듯.

놀이공원과 이 절은 닮은 점이 많다. 놀이공원에선 놀이기구를 제공하고, 절에선 종교 행사를 제공하는데, 둘 다 별도의 비용을 요구한다는 점. 놀이공원에선 연예인이 예체능 계열의 이벤트를 가끔씩 선보이는 것처럼 절에서는 정치인이 정치적인 이벤트를 선보인다는 점. 또, 양쪽 모두 참기 힘들 만큼 끔찍한 인파와 잡상인들. 굳이 차이점이라면 모여든 사람의 연령층 정도일까?

어쩌면 엄숙한 척 하는 각종 종교행사들은 그저 어른들을 위한 놀이공원의 한 종류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날 내가 어머님을 모시고 절에 갔던 것은 뭔가 부적절한 느낌이다. 어버이날이었으면 모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