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14, 2011

게임을 한다는 것

어린 시절, 선생님들은 '오락실' 이나 '만화가게' 같은 곳에 가면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으므로, '오락실' 이나 '만화가게'는 불량학생들이 우글거리는 소굴 같은 거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날, 전혀 불량하지 않은 옆집 사는 여자애가 오락실에 갔다 왔다고 자랑을 했다. 친척집이 오락실을 한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도 호기심이 불타올랐는데, 애한테 며칠에 걸쳐서 '킹콩' 과 '방구차'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끊임없는 설명을 듣고 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시의 '킹콩'과 '방구차' 화면이다. '킹콩'의 정식 명칭은 'Crazy Kong' 이었고, '방구차'의 정식 명칭은 'New Rally X' 였다. 축소 같은 거 전혀 없이, 그대로 가져온 화면이다. 해상도(픽셀 수)가 요즘 나오는 핸드폰의 1/4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당시는 오락실에 컬러 화면보다 흑백 화면이 더 많았다. 흑백 화면에 색색가지 셀로판지를 붙여서 일종의 '가상 컬러'를 구현했다고나 할까......

동네 '문방구' 들에는 으례히 이런 오락기들이 몇 대 씩은 갖춰져 있었고, 한 판 하는데 50원 이었다. 물가 환산을 해 보면 지금 돈으로는 700원 가까이 될 것 같다. 돈이 없어서, 실제로 게임을 하는 시간보다는 구경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는데도, 나는 이 게임들에 미친듯이 빠져버렸다.

제일 자주 가던 문방구에는 페인트(Crush Roller), 갤럭시(Galaxian), 킹콩(Crazy Kong) 이 있었고, 그 옆 문방구에는 갤러그(Galaga), 땅굴파기(ZigZag) 그리고 두어 가지가 더 있었다. 가게마다 다른 오락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나는, 곧 걸어서 한 시간 내외 거리에 있는 모든 오락실을 다 돌아다니며, 어느 가게에는 어떤 기계가 있고, 화면 한구석이 잘려 보인다거나, 단추 하나가 잘 안 눌린다거나 하는 것까지 다 알게 되었다. '오락실'의 세계는 그렇게 흥미진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되어, Personal Computer 라는 것이 보급되기 시작한다. 지금은 PC의 용도가 많이 달라졌지만, network 라는 존재가 민간인에게는 낯설기만 하던 당시, PC의 주 용도는 패키지 게임이었다.

당대의 명품 PC Apple ][, 역시 명작 Archon 과 LodeRunner.

나는 게임을 맘껏 해 보자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전공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는 거금을 들여서 나름 최신의 IBM-PC를 장만했고, 내 주변에 포착되는 모든 게임들을 섭렵했다. Ys(MSX에서 IBM PC로 이식된 것), 천사의 제국, 원숭이섬의 비밀 등. 대학때 했던 게임중 기록을 남긴 것만 400종이 훨씬 넘는다. (이 부분은 screenshot을 쉽게 뽑아낼 준비가 안 돼 있어서 아쉽다.)

운 좋게도 전공이 직업으로 이어져 프로그래밍을 생업으로 삼게 되었다. 처음 취직을 하고 몇 년 동안은 게임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 유명한 Starcraft로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지금은 몇 년째 주로 WOW를 하고 있다.


WOW 화면. 흔하지 않은 여자 드워프 이다.

WOW로 한 달에 지불하는 금액은 2만원 미만. 매달 지불하면 19800이고, 석 달 분을 한꺼번에 지불하면 47520 이던가... 거기에 컴퓨터 upgrade 비용을 일 년에 100만원 잡고, 굳이 WOW가 아니어도 직업상 3년에 한 번은 컴퓨터를 upgrade 할테니, 3년에 대충 200만원의 비용이라고 치면 한달에 7만5천 정도의 비용이 된다. 아.... 전기요금 만원 정도 추가. 인터넷은 굳이 WOW 안 해도 사용할테니 패스. 한 달 8만5천 정도에 거의 '무제한'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이 또 있을까? '산책' 정도 외에는 불가능 할 것 같은데...... - 책 값이 하도 비싸서 '독서'도 만만치 않은 세상이니......

이렇게 게임은 내 인생에서 커다란 한 축이 되어 있다. 만약에 게임을 안 했다면 내 인생이 나아 졌을까? 현재와 무척 다를 거라는 부분은 확신할 수 있지만 현재보다 나을 지는 전혀 장담 못 하겠다.

이러한 게임이 요즘 '사회악' 취급을 받고 있다. 지능이 상당히 떨어져 보이는 어떤 여자는 게임을 하면 '짐승 뇌'가 된다며 악을 쓰고 있다. 그 여자 주장대로라면 어릴 때부터 게임을 인생의 낙으로 삼은 나 같은 사람은 지금쯤 희대의 사이코패스가 되어 연쇄 살인 세계 기록에라도 도전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국가적으로는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아예 모든 외국 게임을 사실상 차단해 버렸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과 수고를 들여 '사전심의'를 받아야만 우리 나라에서 '발표'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정도면 일단 발표되는 게임들은 모두 존경하고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세상의 모든 게이머와 게임 제작자들의 편에서 여성가족부를 규탄한다.

'당신들의 존재는 모니터 안에 있는 흰 곰 한 마리만큼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아. 내 피같은 돈을 뜯어다가 당신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면 담즙이 역류하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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