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05, 2011

20년을 뛰어넘은 구글링

어린 시절에 운이 좋아서 computer 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8Bit Personal Computer. Apple ][. 요즘은 어디 가서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박물관 같은 데 가면 구경은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인터넷을 뒤적이다 보면 목제 케이스로 만들어진 물건도 있던데, 내가 가졌던 것은 새끈한 플라스틱 케이스였다.

처음엔 Disk를 넣고 켜면 게임이 실행된다는 정도만 알고 사용을 시작했는데, 점점 PR#6 같은 것도 알게 되고, CALL-151 같은 것도 해 보게 되고......

Computer를 구입할 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그랬듯이 한 뭉치의 불법 복제 디스크를 함께 받았다. 빈 디스크 가격으로 구입을 했고, 그중 8 장에는 갖가지 프로그램들과 게임들이 들어있었다. 여담이지만, 그 중에 하나가 정말 디스크가 물리적으로 닳도록 사용한 Copy Program 이라는 것이었고, 그 프로그램은 같은 형태에 PCTOOLS 라는 이름으로 IBM-PC 에서도 한동안 매우 유용한 프로그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머지 디스크의 내용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크리티칼, 캡틴 굿나잇, 로드런너, 플로피, 아콘 등의 게임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었던 DOS.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Copy Program 이라는 disk는 Pronto-DOS 라는 DOS를 사용해서 만들어져 있고, 제법 멋진 시작 프로그램까지 들어 있는 형태였다. 하지만 그냥 DOS 라고 써 있던 disk는 오리지날에 가까운 Apple DOS 3.3 이었다.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용한 시스템 도구들이겠지만, 엔드 유저, 특히 별도의 Copy Program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알 수 없는 내용물로 가득 찬 공간 낭비로 보였다. - 그래도 끝까지 그 disk를 format 해서 다른 용도로 쓰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게임이 분명한 다른 disk 들과, copy 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Copy Program으로 충분히 이것 저것 해 보고 난 다음에는 드디어 그 DOS 에도 관심을 한 번 주기로 했던 것 같다. 안에 들어 있는 program 들을 이것 저것 실행시켜 보았다. 지금 보면 제목만 봐도 뭘 하는 건지 대충 알 것 같은데, 그때는 도무지 뭐가 뭔지 몰랐으니, 그냥 한 번씩 실행 시켜 봤던 것 같다. 뭔가 보이는 결과가 나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중 하나는 Graphic Demo 라고, 40x48 정도 되는 Low-res graphic 화면에 뭔가 만화경 같은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같다. - 지금은 휴대폰 화면의 코딱지 만한 icon 하나도 저것 보다는 해상도가 높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 보려는 Music Demo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Apple ][ 에는 손쉽게 음악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신기하게도 음악을 들려 주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듣기에도 두 곡이 연달아 나오고 종료하는 걸로 보였다. 아니, 들렸다. 그 프로그램은 화면에 단 한 줄도 표시하지 않고, 소리만 내다가 종료했다.

나는 첫 번째 곡보다 두 번째 곡이 더 좋았는데, 첫 번째 곡을 건너 뛰고 두 번째 곡을 들을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첫 번째 곡부터 계속 듣곤 했던 것 같다.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나중에 알게 된 그 첫 번째 곡은 바로 이거였다.

바하 평균율 피아노 1-1. C장조
Vintage Bach Well-Tempered Clavier, Book I, Prelude 1 in C
http://www.youtube.com/watch?v=DAZ8KNsZSCg

뭐, 이런 우아한 피아노 소리가 났을 리는 전혀 없고, 흑백 전화기 시절 전화올 때 울려퍼지는 밀양아리랑 톤으로 위 음악이 나왔다고 생각하면 딱 맞다.

두 번째 곡은, 첫 번째 곡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인데 도무지 어떤 곡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의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막상 누군가에게 물어 보려고 해도, 일단 내 컴퓨터 앞으로 데려 와서, 짧지 않은 앞의 곡을 다 들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물어 볼 수 있으니, 그 자체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 후로 20년이 넘게 흘렀다. 그러다가 근래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런 동영상을 접하게 됐다.

http://humor.hani.co.kr/board/view.html?uid=41206&cline=3&board_id=h_humor&sk=%BF%A2%BC%BF&so=T

계산 프로그램인 엑셀로 그림을 그려내는 독특한 영상인데, 30초쯤 지난 후부터는 화면이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저 배경음악이 바로 내가 어릴 때 궁금했던 그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배경음악이 뭐냐고 댓글을 달긴 했는데, 원래 위 사이트는 인기도 별로 없고, 댓글도 별로 없는 사이트다. 예상했던 대로 답변도 없었다. 그래서 위 동영상을 실제 호스팅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다음 쪽으로 들어가서, 해당 동영상에 또 질문을 붙였다. 이거 배경 음악 뭔지 아냐고. 그 후로 십여 개의 댓글이 달리긴 했지만, 그 누구도 내 질문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지금은 무슨 이유에선지 내 댓글 자체가 아예 삭제된 것 같다. 누군가의 명예 또는 저작권을 침해했거나, 미풍양속을 심히 저해했거나, 아니면 직원이 실수를 했거나...... OTL.....

좌절하고, 한 동안 잊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올랐다. 우리나라 동영상 사이트에 있는 컨텐츠의 대부분은 그냥 유튜브에서 퍼오는 거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나라 에서는 엑셀로 저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 있다면 벌써 '네임드'가 되어 있겠지. 이 두 가지를 연결 해 보면, 위 동영상은 원본이 유튜브일 확률이 높다는 추측이 가능했다.

역시 바로 나왔다. 백만 뷰 이상. 국내 사이트 것들 보다 화질도 좋고, 음질도 좋고.
http://www.youtube.com/watch?v=4YG_WWZYqUs

다행히 여기 댓글에도 누군가는 배경 음악이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었고, 더 다행히 답도 있었다.

Solfreludio, Delta.

라는 짤막한 답변.
Delta 라는 그룹의 Solfreludio 라는 곡이란다. Delta 라는 이름값 덕분에 인터넷을 검색하면 대부분 델타 항공이 먼저 나온다. 그다지 유명한 그룹은 아닌 것 같다. 또, 저 곡도 그다지 유명한 곡은 아닌 것 같다. 검색해 보니 이런 링크가 나온다.

http://www.youtube.com/watch?v=THhoqGpWB-g

어쩐지 음의 진행이 클래식한 느낌이더니, Bach 의 Solfeggietto 에서 따왔구나. 그러고 보니, 이 음의 진행은 상당히 바하스럽다. 2성 invention 이나 평균율 피아노 등에서 느낀 것과 비슷하게 전개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비슷한 느낌인데 왜 어릴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고 생각했을까.

내친 김에 Bach의 Solfeggietto를 검색해 봤다. 피아노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미칠 것 같은 빠르기로 연주하는 동영상이 대부분이다. 그중 이 영상이 그나마 예전 느낌과 제일 비슷한 것 같다.

http://www.youtube.com/watch?v=wqmwlzEBFfI&feature=related

작곡자는 CPE Bach 란다. 하긴, Bach 가문은 음악가 가문이라서 제일 유명한 J.S. Bach 말고도 많다고 했었지. 이번엔 위키피디아를 뒤졌다.

http://en.wikipedia.org/wiki/Bach_family

아예 '패밀리'로 계셔 주신다. Carl Philipp Emanuel Bach 는 Johann Sebastian Bach 의 둘째 아들 쯤 되시는 분인 것 같다.

Solfeggietto로 표시한 데도 있고, Solfeggio 로 표시한 데도 있다. 어쨌든, 이것 저것 들어 본다. 피아노 버전. 기타 버전. 오르간 버전. 락 편곡. 재즈 편곡. 그리고 앞서 나왔던 Delta의 Solfreludio.

어렸을 때, 피아노 치던 사촌누나에게 물어봤으면 아마 바로 답이 나왔을 것 같다.

역시 인터넷의 세계는 신기하다. 내가 찾던 그 무언가가 어딘가에는 있고, 찾으면 찾아 진다. 하지만 광고의 바다 인터넷에서 원하는 것을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 - 그래도 없는 것보단 훨씬 좋지 아니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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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pril 02, 2011

빈말

신문에서 이런 기사가 눈에 띄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4011545251&code=920100

이 링크가 얼마 동안이나 살아 있을 지 모르니 내용을 간추려 보자면, 알바생들이 선정한 사장님의 거짓말 순위. 1위, 다음에 꼭 놀러와. 그 다음부터 차례로 알바비 곧 올려줄게. 그동안 수고했어. 알바비 곧 줄게. 이번까지만 고생하자. 이달 매출이 적어. 열심히 하면 직원으로 뽑아줄게. 알바생 더 뽑아줄게, 조금만 참아. 담엔 보너스 더 줄게. 반대로 알바생들이 하는 거짓말은 1위가 오래 일할게요. 그 다음부터는 힘들어도 괜찮아요. 열심히 할게요. 몸이 좀 안좋아요. 집에 급한 일이 있어요. 차가 너무 막혀서요. 사장님이 최고예요. 제가 안 그랬는데요. -_-;

척 들어 봐도 그냥 '아... 이건 아니구나....' 싶은 말이 꽤 많은 것 같다. 법이 정한 최저임금도 채 못 받는 일이 당연시 되는 알바들과, 뭐든지 다 지들이 하려는 대기업 틈에서 피가 마르는 점주들 입장에도 나름 어려움이 있긴 하겠지만, 정말 비겁한 거짓말들이다.

그런데, 사장님의 거짓말 중 1위인 '다음에 꼭 놀러와'. 이건 좀 의외다. '진심' 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위에 열거된 다른 대사들에 비하면 '선의의 거짓말'에 가깝지 않은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 대사가 1위가 된 것일까?

어린 시절에, 모 학원에 잠시 다닌 적이 있었다. 소정의 과정을 수료하고 나서, 마음 좋아 보이는 원장님이 바로 저 대사를 했다. 어린 마음에도 '내가 학원에 놀러 올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길에서 그분을 다시 마주치게 됐는데, 다시 '언제 한 번 꼭 놀러 와' 라고 하시는 것 아닌가. 난 혼란스러웠다.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한 어린 시절이었기에, 내가 놀러 가지 않아서 저분이 서운하셨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며칠 뒤, 짬을 내서, 정말로 학원에 놀러 갔다. '응? 웬일이니?' 하는 좀 당황한 듯한 원장님. '아... 언제 한 번 몰러 오라고 하셔서.....' 소정의 과정을 마치면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학원의 속성상, 아는 원생들도 단 한 명도 없고, 불행히 그 전에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도 안 계신 것 같았다. 단 한 명 아는 사람, 그리고 나를 '초대' 한 것으로 되어있는 그분은 내 등장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고, 나는 그제서야 내가 들었던 말들이 아무런 내용도 알맹이도 없는 '빈말' 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앉아서 차를 한 잔 마셨는지, 학원 차를 타고 왔는지, 아니면 걸어 왔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무런 기억도 남아 있지 않은데, 눈이 휘둥그래진 채 당황하던 원장님 모습만 생생하다.


한 번 더 그 비슷한 추억이 있다. 친한 친구 한 녀석이 있는데, 전화로 무슨 얘기를 한 끝에 '이따가 내가 전화 할게' 라고 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상위 1% 중에서도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은 극소수였던 때였고, 나는 온 종일 전화기 옆에 앉아 전화를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뻔히 예상할 수 있듯이 전화는 오지 않았고, 밤 쯤이 되어서인가, 나 역시 '얘가 잊어버렸나보다' 하면서 포기했던 것 같다.

그 후로 두세 번인가 그런 일이 더 있었다. 딱히 할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왜 전화 하지 않았냐고 따져 묻기도 좀 이상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그런 일들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고, 어느 날은 드디어 그 친구가 '이따가 내가 전화 할게' 라고 할 때, '언제?' 라고 묻고 말았다. '응?' 수화기 구멍으로 그 친구의 당황이 줄줄 흘러 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우울하게도 또다시 '유레카' 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에게 있어서 '이따가 전화 할게' 는 그냥 '잘있어' 와 비슷한 인사말이 었던 거다. 전화를 걸 때엔 '안녕하세요' 하지 않고 '여보세요' 하듯이, 전화를 끊을 때에는 '잘있어' 나, '잘가'나, 그런 말 대신 그냥 '이따가 또 전화 할게' 였던 것이었다.

힘든 학습을 한 나는, 그 친구의 '이따가 전화 할게' 에 더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확인 해 보고 바로 전화 줄게' 라던지, '7시 경에 일 마치면 전화 할게' 처럼, 확실히 인사말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아니면 그냥 '빠이~' 라고 번역해서 이해하게 된다.


근래엔 이런 일도 있었다. 전 직장에서 반 년 가까이 같이 협업을 한 직원이 있었다. 다른 회사로 파견 나가서, 단 둘이서만 같이 일을 한 셈이고, 협업이 꽤 잘 된 것 같다. 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된다.

직장을 옮기고 나서, 그 직원 입장에서도 안좋은 회사에 계속 다니느니, 우리 회사로 옮겨서, 계속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언제 한 번 만나서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연락을 했었다. '제가 다음 주쯤에 시간 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연락은 없었고, 한 달쯤 뒤에 내가 다시 연락을 했던 것 같다. 그때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고, 그 이후로는 서로 연락이 없는 상태다.

그러다가 근래에 이런 신문 기사를 봤다. 분명 요 근래 본 것 같은데, 인터넷 검색으로는 2007년 기사밖에 안 나온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2958185

이런...... 내가 한 말은 비록 진심이었어도, '가장 흔한 거짓말 1등!' 이었던 거다. 왠지 서글펐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은 그 뜻을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시간 내서 저녁 한 번 같이 먹자' 는 그에게 '안녕히 계세요' 로 번역되었고, 그는 나에게 '다음 주쯤 시간 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라는 형식으로 '안녕히 계세요' 라는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마치 외국인이 된 듯한 느낌이다. 사전에는 이러이러한 뜻인데, 관용적으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타 문화권의 의사 소통 장벽에 걸린 듯한 느낌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대로 계속 가면 언젠가는 번역기조차 '언제 밥 한 번 먹자'를 'Good-bye'로 번역하게 될까? 현재 구글의 번역기는 이도 저도 아닌 생뚱맞은 답을 내 놓고 있긴 하다.
http://translate.google.com/#ko|en|%EC%96%B8%EC%A0%9C%20%EB%B0%A5%20%ED%95%9C%20%EB%B2%88%20%EB%A8%B9%EC%9E%90.%0A
'You eat rice once.' 라니.

여기에 내가 쓴 글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뜻으로 읽힐까. 아니, 과연 읽히기나 하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