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01, 2013

비러머글 다이소!

다이소 라는 가게가 있다. 예전에 한때 유행했던 '천냥백화점' 이라는 가게들을 싹 몰아 내고 그 자리를 떡하니 주워 먹은 거대(?) 체인점이다.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품질을 앞세워, 유통계에서 무시하지 못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친절한 위키백과는 해당 유통망이 일본 기업임을 알려 주고 있다.
과거에는 분명 천 원이 꽤나 가치가 있었다. 천냥백화점이 유행한 지는 10 년도 더 지난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천 원의 가치는 버스를 한 번 타기에도 모자라는 실정이고, 뭔가 군것질 거리를 사기에도 부족한 금액이다. - 제일 싼 거 한 개 집으면 700원 정도 하려나.
덕분에 이러한 금전 가치 하락에 발맞춰, 더이상 천냥백화점의 물품들은 천 원이 아니다. 이천 원, 삼천 원, 오천 원...... 다이소의 일부 품목은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만 원도 넘는 가격표를 달고 있기까지 하다.
이러한 가게. 고급의 품질은 아니지만, 그럭 저럭 쓸 만 한 제품을 저렴하게 팔아 주는 고마운 가게라는 생각이 반 년쯤 전까지의 다이소에 대한 인식이었다. 브랜드 이미지가 참 좋았다.
작년 6월 말 경 이사를 하면서,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다이소에서 구매했다. 소위 이름난 ■■마트 보다 저렴한 가격에 감사하면서. 수건, 벽걸이 스티커 몇 개, 문 충돌보호대, 뭐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 가격이 가겨이니만큼 나도 그 품질에 큰 기대는 걸고 있지 않았다. 대충 1년 정도 제자리에 붙어 있어 주면 선방한 거고, 운 좋으면 2년 정도 - 그러니까, 전세 기간이 만료될 때 까지 -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한 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주방의 벽걸이 스티커가 떨어졌다. 국자, 부침개 뒤집개, 가위, 밥주걱 뭐 그정 도가 걸려 있었다. 여섯 개의 고리를 다 채우지도 않고 다섯 가지만 걸려 있었고, 그중 평범한 조리기구로서 무게가 나간다 싶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지난번 ■■마트에서 구입한 벽걸이 스티커에서는맹세코 2년동안 단 한 번도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애들이다. 좀 짜증이 났지만, 그 제품이 부실한 거겠지 싶어서 확 뜯어 내버렸다. 그리고 별 수 없이 ■■마트에서 좀 더 비싼 제품을 사야 했다.
이런 걸로 스트레스 받는 것보단 그냥 몇 천 원 더 쓰고 말지. 그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싶은 심정이었다.
얼마 후에는 문 충돌 보호대가 떨어졌다. 오 마이 갓!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접착 부분이 심하게 녹아내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붙여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다시 붙였다. 이삼 일 만에 또 떨어졌다. 아무리 정성껏 붙여도 또 떨어졌다. 안되겠다 싶어서, 아예 뒷면의 끈적이들을 다 닦아내고 순간접착제로 붙여 버렸다.
이때, 또 실수를 했다.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순간접착제를 하필 또 다이소에서 사왔다. 역시나 떨어졌다. 매끈한 타일면, 매끈한 플라스틱. 정상적인 순간접착제라면 감히 떨어질 생각을 할 수도 없는 환경이다. 일례로, 본가의 문짝에 붙인 충돌보호대는 7 년이 지난 지금도 잘 붙어 있다. 색깔만 바랬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양면 테이프는 그정도 크기의 플라스틱 덩어리를 수직면에 당연히 거의 영구히 접착시켜 둘 수 있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었나보다. 게다가 돌 두 개를 붙이면, 돌이 깨질지언정 접착면이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우주왕복선에 사용된 기술이라는 순간접착제에도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한 달 가량, 이걸로 붙였다가 저걸로 붙였다가 하며 스트레스를 받은 끝에, 결국은 본가에 사용했던 브랜드를 찾아서 다시 구입했다. 가격은 욕나오게 비싸다. 다이소의 세 배는 가뿐이 넘겨 주신다. 그래도 지금 같아서는 만족도 역시 세 배를 가뿐히 넘긴다. 혹시 이것도 떨어지면 벽면에 뭔가 안좋은 비밀이 있을 것도 같고......
역시 비싼 브랜드는 제 값을 하는 건지, 지금까지 7~8 개월이 지났는데 떨어지거나 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요즘 한동안 별다른 일이 없어서 잊고 지냈는데, 엊그제 또 한 건의 사건이 생겼다. 벽에 멀쩡히 잘 걸려 있던 시계가 멈춘 것이다. 경험적으로 보아, 아무런 충격 없이 시계가 멈추는 경우는 99% 이상 배터리가 다 된 거다. 그래서 배터리를 갈았다. 움직이지 않는다. 이상해서 다른 배터리로 또 갈았다. 역시 움직이지 않는다. 아오 썅! 욕이 절로 나왔다. '이렇게 싼 가격에 시계를 장만할 수 있다니! ■■마트의 반 값도 안되잖아!' 라고 환호하며 다이소에서 지른 시계다.
가만히 잘 가던 시계가, 아무런 외부 충격 없이 저절로 망가지는 경우는 내 생전 처음 본 것 같다. 본가의 선반 구석에 얹혀 있는 30년 넘은 태엽시계는 지금도 잘 간다. (물론 태엽만 감아 주면.) 주변 사람들 한테서도 어느 날 갑자기 시계가 멈춰 버렸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Made in China.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는 세 단어가 박혀 있었다. 착한 가격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도 벽시계가 1 년도 안 돼서 죽어 버리는 건.... 이건 아니잖아! - 폭발하지 않아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하는 걸까?
현재 다이소에서 구입한 것으로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극세사 타월과 쓰고 남은 잘 떨어지는 순간접착제가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짜증 반 두려움 반이다.앞으로 웬만해서는 다이소에 갈 것 같지 않다. 진짜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 정도라면 모를까......
이렇게 누군가를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헐뜯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 글이 공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다이소 역시 기대에 심하게 못 미치는 제품으로 나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줬다. 보급형 양산품의 품질 편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적인 불행일 뿐이더라도 내가 그 제품들을 다이소에서 구입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조만간, 업그레이드판인 '만냥백화점'이 나올 것도 같은데, 어쨌거나, 다이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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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July 19, 2012

Google 굴욕 종료

지난번 글에 썼던 구글 굴욕이 종료되었다. 며칠 전쯤 종료되었는데, 내가 뭐 구글 관계자도 아니고 대변인도 아니고, 빠릿 빠릿 업데이트 할 의무는 없는 거니까......

이제 '워크래프트' 를 검색해도, '스타크래프트'를 검색해도 뭔가 진짜 뉴스 같은 글이 검색된다. 어딘지 알 수 없는 '프레스 파주'는 더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그 사이트가 어떻게 됐는지는 전혀 관심 없다. '허리케인'을 입력할 때마다 나오는 프레스파주의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면적 어쩌구 하는 도저히 해독 불가능한 글도 이제 안녕이다.

구글 화이팅~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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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ly 01, 2012

구글의 굴욕

요즘 구글이 미쳤다. 대대적으로 능욕을 당하시는 중이다. 여러 가지 구글 서비스 중 뉴스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다음 링크를 보자.
http://www.google.com/search?hl=ko&safe=off&gl=kr&tbm=nws&q=%EC%9B%8C%ED%81%AC%EB%9E%98%ED%94%84%ED%8A%B8&oq=%EC%9B%8C%ED%81%AC%EB%9E%98%ED%94%84%ED%8A%B8&gs_l=serp.3...141905.143213.0.143437.11.11.0.0.0.0.152.918.5j6.11.0...0.0.pV4b-KuZ79E
구글 뉴스 검색창에 키워드로 '워크래프트'를 넣은 거다.

혹시 구글 서비스가 정상화 되어 평범한 검색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니, 스크린 샷을 찍어 놔야 할 것 같다. 첫 페이지를 두 장으로 나눠 찍었다.



모든 뉴스가 '경기일보 파주지사' 라는 페이지를 참조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워크래프트 핵' 이 탑뉴스라고? 그것도 워크래프트3?

해당 기사를 보면 아주 가관이다. 한글 같지도 않은, 자동 생성기로 생성한 것 같은 이상한 문장이 널려 있다. 그나마도 지난 목요일 까지는 프레스파주 라는 웹페이지가 나왔는데, 오늘은 아예 불법복제물 판매 사이트로 연결된다. 프레스파주는 이런 글이 씌여 있는 사이트다.

이게 어딜 봐서 뉴스인가? 광고도 아니고, 그냥 오류 내지는자동생성된 문장으로 보이는데...... 오늘 연결되는 사이트는 이거.

'파일공유' 라는 명목하에 불법복제물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흔해빠진 사이트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이 두어 주일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글에 신고도 해 봤지만 반응은 없고, 개선되지도 않는다.

프레스파주 라는 사이트가 구글 검색 알고리즘을 제대로 능욕하고 있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워크래프트' 뿐 아니라 게임 관련된 대부분의 키워드는 친절한 구글씨가 프레스파주를 최고의 뉴스로 뽑아준다. 그밖에 연예인이나 기술 쪽의 키워드도 상당 부분 '따먹혔다'. 도대체 구글은 뭘 하고 있는지...... 이렇게 무능한 회사였는지......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 오늘 갑자기 등장한 오디스크는 뭘까? 구글을 엿먹인 실체일까? 아니면 그저 구글 능욕 외에는 별 관심 없는 프레스파주를 해킹해서 이익을 취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관계 사이트들을 여기 저기 신고해 봐야 우리나라 공권력이 딱히 수사해 줄 것 같지도 않고, 구글 자신이 손 놓고 있는 상황에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제 구글의 공신력은 무너졌다. 그나마 아직 네이버 보다는 낫다고 해 줘야 하나......

=^.^=

Friday, December 16, 2011

털신 이야기

겨울이다.

우리 회사는 겨울에 살짝 추운 편이다. 건물 자체가 오래되어 단열 기능이 좋지 않은 데다가, 난방 역시 '시스템 에어컨' 인가 하는 것을 사용하는데, 위에서 뜨거운 공기를 불어대는 통에 얼굴은 후끈후끈 하고 목이 칼칼해져 와도 여전히 발은 시린 물건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살이 뒤룩 뒤룩 찐 덕분에 이전보다는 추위를 확실히 덜 탄다는 것.

아무리 살이 쪘어도 발이 시린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해 낸 것이 '털신'이었다. 과연 따뜻할까? 비싸진 않을까?

우연히 들른 마트에 마침 눈에 딱 들어오는 털신이 있었다. 가격은 9900원. 나름 인기 있는 제품이었는지, 사이즈가 없다. 내 발 사이즈보다 좀 작은 것만 남았다. 신어 보니, 그럭 저럭 신을 만 할 것 같았다. 많이 걸어 봐야 사무실 내 자리에서 화장실 까지 왕복하는 정도에 불과하니 별 상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과감히 구입했다.

첫째날. 신발을 신으니 확실히 발이 포근하고 따뜻했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의외의 부작용이 있었다. 정전기. 이전까지는 가끔 한 번쯤 빠직 했다면 이제는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한 번씩 벼락을 맞는 것 같다. 하루에 열 번 정도? 그러다 보니 저녁 쯤에는 노이로제가 생길 지경이 되었다. 뭔가에 손을 대야 할 때마다 공포감이 들었다. 어떡하나. 털신을 포기해야 하나.

둘째날. 그나마 충격이 덜한 방전 장소를 발견했다. 사무실의 화분. 그 나무에 손을 대서 방전이 발생하면, 다른 곳에 비해서 훨씬 충격이 적다. 올 때 갈 때 그 나무를 한 번씩 만져 준다. 빠지직 하는 느낌 대신 따닥 하는 정도지만 그래도 만질 때마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도록 신경이 예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걔도 생물인데 왠지 미안하기도 하고......

오늘. 공기가 너무 건조해서 가습기를 트는 것이 어떻겠냐고 얘기했더니 옆자리 동료가 어디서 가습기를 가져 왔다. 기분이 좀 나아 지는 것 같다. 게다가 정전기도 없어졌다! 초음파 가습기를 만든 사람에게 노벨상이라도 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덕분에 평화롭고 행복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한동안 괜찮은 것 같아서 잊을 만 하니 마치 약올리듯이 다시 한 번 빠직 하는 강렬한 충격이 왔다. 가습기로 해결이 안 되는 거였나? 그럼 어떡하지? 정전기 방지 스프레이 같은 것을 사용해야 하나. 그건 또 비싸지 않을까? 그 때 가습기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이 눈에 띄었다. 물이 다 떨어져서 멈춰 있었다. 가습기가 멈추자 마자 다시 정전기가 찾아온 건가?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가습기에 물을 한 가득 담아 놓고 촉촉하게 지내 봐야 할 것 같다.

발시린 것이 참을 만 할까, 아니면 정전기가 더 참을 만 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더 비싼 털신을 구입하는 방법도 있을 거고, 뭔가 방법이 있겠지.

이런 정도의 고민이 전부인 요즘의 일상에 감사한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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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November 22, 2011

FTA 비준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적는다.

한미 FTA가 국회의 날치기로 비준되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고 아무리 외쳐 봐야 소용이 없다.

2011년 11월 22일.

5년 뒤, 이날이 어떻게 기억될까? 50년 뒤에는 어떻게 기억될까?
국운이 도약하는 날로? 아니면 경술국치에 버금가는 치욕으로?

50년 뒤를 알 재간이 내게는 없다. 그 때 까지 살아 있을 자신도 없다.

여러 가지 암담한 전망들이 사실이 된다면 5년 내에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잊지 않겠다. 죽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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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ugust 13, 2011

지구상상전

얼마전 지구상상전 이라는 사진 전시회를 관람했다.

인터넷에서 안내를 접하고는 한 번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면서 못 갔다가, 지난 번에는 휴가 기간 동안에 관람해야지 했었는데, 휴가에 맞춰 내린 폭설로 전시장이 폐쇄되는 상황까지 가 버렸었다.

이번에도 안 가면 이제 전시회가 종료되는 시점이 되어서야 드디어 귀찮은 몸을 움직였다.

관람료는 만원. 전시회가 종료되고 나서도 아래 링크가 얼마나 살아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공식 홈페이지다.

http://jigusangsang.co.kr/

닉 브랜트(Nick Brandt)
조이스 테네슨(Joyce Tenneson)
루드 반 엠펠(Ruud van Empel)
데이비드 마이셀(David Maisel)
아르노 라파엘 밍킨넨(Arno Rafael Minkkinen)
메리 매팅리(Mary Mattingly)
지아코모 코스타(Giacomo Costa)
데이비드 트라우트리마스(David Trautrimas)
피포 누옌-두이(Pipo Nguyen-duy)
존 고토(John Goto)

이상 열 명의 작가의 작품. 거기에 로이터 통신사의 사진.

일단 이 사진 한 장 보자.

요즘 인기인 모 방송 프로그램 흉내를 내서 '나는 코끼리다' 라고 이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이 작품 제목은 '물마시는 코끼리' 란다. 요기서 가져왔다.
http://blog.hani.co.kr/bonbon/33808
위 블로그에 잘 나와 있듯이 닉 브랜트 라는 작가이고, 동물사진의 대가다. 저 코끼리 사진과, 달려들 듯한 물소 사진. 커다란 크기로 보면 정말 위압감 느껴질 정도로 멋있다.

다음으로, 사람의 몸을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작가도 있다.

역시 같은 블로그
http://blog.hani.co.kr/bonbon/33837
에서 가져왔다. 아르노 라파엘 밍킨넨 작품. 분명 사람 몸이 맞는데 이질적인 신비로운 이미지가 된다.

이 두 작가의 작품은 정말 돈 내고 보는 보람이 있다. 그밖에는 스스로 '포토샵이 없었다면 아예 그림을 그렸을 것' 이라고 하는 작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작품이 심하다 싶을 만큼 '뽀샵질'을 했고, 그 '뽀샵질'을 예술성으로 들고 나온 거라서 나로서는 별로 마음에 안 들었다.

버려진 여러 부품으로 이런 저런 기계나 건물의 모양을 만든 사진, 아른거리는 물 속 세상, 폐허가 된 도시, 마치 회화 작품 같은 인물 사진 등은 그중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작품이 반쯤은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존 고토 라는 분의 작품은, 미안하게도, 보기 민망할 만큼 엉성했다. 뽀샵질로 스토리를 만들려고 한 것 같은데, 원래의 배경인 영국 풍경이 익숙치 않아서인지 스토리는 하나도 와 닿지 않고 '뽀샵을 하려거든 잘 이라도 하지......' 라는 느낌 뿐이다.

전반적으로 관람료 만 원이 아까울 듯 말 듯한 전시회였다.

하지만 정작 충격은 전시회장 출구 밖에 있었다! 사진전 도록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같은 주관사에서 주관했던 지난번 전시회의 도록까지 함께 팔고 있었다. '매그넘 코리아' 대 도록. 나는 그걸 십만 원을 내고 구입했는데, 지금은 이만 원에 팔고 있었다. 미친 거 아니야? 이러면 다음에 좀 비싼 물건을 들고 나왔을 때 누가 사 주겠어? 조금만 지나면 반의 반 값에 살 수 있는데......

판매하는 종업원의 행태는 정말 화가 난다. 도록과 저 가방 주세요. 네, 만구천원입니다. 저기요, 세트로 할인하고 있다고 써 있는데요. 어머, 그렇네요. 그렇게 계산 해 드릴게요. 직원이 멍청했을까, 아니면 사악했을까. 잠시 뒤 사악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매장 바깥쪽에 광고판이 있었다. 저기요, 만오천원 넘게 구입하면 사은품 준다고 써 있는데요. 어머, 깜박 잊었어요. 여기.

한 번은 실수라고 쳐도 연속 두 번이면 이건 고의에 가깝다. 안그래도 전시회의 반은 '저질 뽀샵'으로 채워져 있어서 은근 불만스러웠던 데다가 날씨는 미치도록 더워서 땀과 짜증이 줄줄 흐르는데, 내가 큰 맘 먹고 구입했던 물건은 이제 거의 폐지값에 팔리고 있고, 그런 기분에 저런 사기꾼 같은 종업원을 대하고 나니 싸대기라도 한 방 날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주관사인 한겨레에 좀 실망했다.

닉 브랜트의 아름다운 동물들로 그나마 위안을 삼자......

(위 코끼리 사진과 같은 곳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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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23, 2011

경찰 불만

어제 밤 늦게 이동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원래는 일찍 움직였어야 하는 건데, '자폐게임'을 하느라고 좀 늦어졌다. 지하철 막차가 간당간당한 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황급히 옷을 주워 입고, 세수도 못하고, 가방만 메고 달려 나갔다. 집 근처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너무 시간이 늦어서인지 이미 차량신호가 주황색 점멸 상태였다. 뛰어 건널까 했는데, 차 한 대가 달려온다. 차 지나가면 가야지 하고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차가 지나갈 생각을 안 하고 멈춰 선다. 경찰차다. 엥? 뭔 일이지? 어쨌거나 횡단보도이고 차가 멈춰 섰으니 건너가란 뜻이겠지 생각하고 건넌다. 경찰이 나오더니 붙잡는다. 도대체 왜???

경찰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기 소속과 이름을 얘기하긴 했지만, 나는 그사람의 신분을 확인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늦어지면 나만 귀찮다는 생각에 순순히 협조했다. 신분증 보여주고, 가방 열어서 보여주고, 직장이 어디라고도 얘기하고. 이 늦은 시간에 어딜 가느냐는 질문에 내가 꼭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 화가 났지만, 앞서도 언급한 대로 늦어지면 결국 나만 귀찮다는 생각에 이러쿵 저러쿵 내가 살고 있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찍 나갈 생각이었는데 게임하다 늦었다는 얘기는 안했다. 거기까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나를 보고 학생이냐고 물었을 때는 정말 당혹스러웠다. 십년 전 쯤을 마지막으로 들어 본 적이 없는 이야기 인 것 같다. 도대체 이나이에 학생이면 앞으로 어쩔려구. 근데 회사원이란 대답을 듣고, 신분증 까지 보고 나서도 다시 한 번 학생이냐고 묻는 데에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이분 치매신가, 아니면 내가 학생인데 학생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가방 제일 바깥쪽에 회사에서 빌린 책이 한 권 꽂혀 있긴 했다. 가방에 다 책인가요? 아니, 열어 보여 달래서 열어 보여 줬더니 무슨 봉창 뜯는 소린가. 가방 속에 지갑이랑 카메라랑 잡동사니 몇 개 들어 있었는데, 내가 보기엔 책 비슷하게 보이는 물건은 없었다.

가만히 보니 이것이 바삐 가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농담따먹기를 하며 재미있어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타고 가시게? 아직 전철 막차 남았다니까, 다른 한 명이 어디까지 가냐고 자기가 차 시간 남았나 봐 준다며 휴대폰을 꺼낸다. 나 그냥 전철역 가서 확인해 봐도 되거든. 제발 그냥 좀 보내줘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다시 한 번, 더 늦어지면 나만 귀찮다는 생각에 어디까지 간다고 얘기했다. 거기까지 가는 차는 끊겼고, 중간까지 가는 차가 막차란다. 어떡할 거냔다. 왜? 태워다 주게? 아님 니네가 교통부 장관쯤 돼?

나도 한가했으면 인권이니 현행법이니 들먹이며 같이 놀아 줄 의향이 있는데, 너무 바빴기에 가급적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정말 불쾌했다. 정작 도둑이 들어도 못 잡는 주제에...... 게다가 요즘은 검찰과의 밥그릇 싸움도 가관이고, 각종 폭력 조직, 성매매 업소와의 결탁 및 상납 같은 것은 이젠 새로울 것도 없을 지경이면서...... 과연 저런 자들이 이 사회를 지키는 걸까? 아니면 기득권자의 기득권을 지키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자기 밥그릇을 지키는 건가?

겨우 놓여 나서는 전철역으로 달려가 보니 그 경찰이 말한 대로 내가 가려는 곳까지 가는 차는 끊겼고 막차는 중간 까지만 간단다. 처음부터 택시를 탈 수도 있었지만, 바쁜 사람 붙잡아 놀리는 걸로 보이는 그 경찰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굳이 지하 2층까지 내려가서 역무원에게 재차 확인을 해야 했다.

그 사람들은 지난 밤 새 몇 명의 무고한 시만들을 들볶았을까? 몇 건의 범죄를 예방했을까? 어젯 밤의 내 경험은 불쾌하긴 했지만, 그래도 강도를 당하는 것 보다는 나은 거라고 자위해야 하는 걸까? 비슷한 위치에서 내가 강도에게 칼을 맞고 있었다고 해서 딱히 그 사람들이 뭔가 도움이 됐을 것 같진 않은데......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길을 잃으면 파출소에 가서 물어보라고 배웠던 것 같다. 실제로도 몇 번인가 그렇게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한 번은 길을 몰라서 지나가는 경찰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둘이 같이 순찰을 도는 걸로 보였다. 자기네 관할 구역이 아니라서 모른단다. 아.. 네.... 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왜 제복을 입은 채로 관할 구역도 아닌 데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걸까? 모 업소에 성상납이라도 받으러 가는 길이었을까?

요즘 사회는 총체적 불신의 시대다. 경찰도 예외가 아니고,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내 불신도 누군가를 이렇게 불편하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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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July 02, 2011

상반기 결산

올해의 반이 지나갔다. 나름 알차고 보람있게 보낸 것 같다.

체중을 줄이려는 시도는 살짝 빗나갔다. 73kg 또는 그 이하가 될 수 있기를 기대했는데, 6월 30일 측정한 체중은 73.9kg 이었다. 그래도 체중 감량을 위해서 DDR pad를 구입했고, 디지털 체중계도 구입했다. (그런 거 산다고 살이 빠져? 먹는 걸 줄여야지. 라는 얘기 참 많이 들었다. -_-;)

중간에 '안좋은' 일이 한 번 있었다. 맥도날드에서 행사를 한 것이다. 원래 점심시간엔 할인을 했는데, 그 행사와는 별개로, 라지 세트를 주문하면 유리컵을 하나씩 준단다. 총 6가지 색상.

처음엔 별 느낌이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컵을 두 개를 받게 되었다. 그러자 묘하게 수집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날마다 점심 시간이면 컵 색깔이 바뀌지 않았나 한 번씩 살펴 보게 되었고, 색깔이 바뀌면 바로 달려가 라지 세트를 주문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다 먹었다.

처음엔 라지 세트의 감자를 다 먹기가 살짝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별 맛도 모르겠고. 하지만 한주일에 두어 번씩 계속 먹게 되니까, 나중에는 마지막 감자 한 톨까지 술술 넘어간다. 셋이 앉아서 세 명 분의 라지 사이즈 감자 중에 내가 거의 두 명 분을 먹고 나서도 '디저트도 먹을까? 참을까?' 고민할 쯤이 돼서야 행사가 끝났다.



이것이 그 전리품. 겉에 흰색 종이 케이스가 있을 때는 새끈하니 예쁘던 것들이 조금 어두운 장식장에 세워 놓으니 안 예쁘다. 도대체 왜 난.... ㅜ.ㅜ 무엇보다도, 악마같은 맥도날드에 의해 늘어나버린 뱃고래는 줄어들지 않는다. (원래 많이 먹지 않았느냐는 얘기는 정말 듣고 싶지 않다!)

블로그에 글 쓰기도 나쁘지 않았다. 독서 블로그에 독후감들. 그리고 여기에 잡담들. 아무도 오지 않는 다는 점만 빼면 성공적인 블로그라 할 수 있겠다. 트래픽 통계를 보니까, 한주일에 두세 번의 방문이 있는 것 같다. 그나마도 90% 이상은 검색엔진의 방문으로 보인다. 뭐, 이런 상태면, 내 신상이 털릴 일은 없겠다고 위로해야 하는 건가?

장마가 끝나자 마자 무더위와 함께 시작하는 하반기. 꼭 살을 뺄테다. 하지만 맥도날드가 또다른 행사를 들고 나오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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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June 08, 2011

iOS 5?

얼마 전 스티브 잡스 라는 유명인이 발표를 했다. 너무 유명해서 내가 굳이 부연설명 따위 할 필요가 없기는 한데, 혹시라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정도는 알아 두는 것도 괜찮겠다.

* 이십여년 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다.
* 잘 다니던 회사에서 쫒겨난 적이 있다.
* 쫒겨난 회사에 어떻게 다시 들어가서 연봉 1달러를 받고 일한다고 한다.
* 그를 반쯤 신격화까지 하는 팬 층이 있다.
* 최근 시한부 생명 설이 나돈다.

뭐,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블로그 씩이나 읽어보는 사람이 위에 적은 사실 또는 루머들만 보고 그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한다면 내 책임은 아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내 블로그에 접속할 확률보다는 스티브 잡스의 생애에 대해 쓴 글을 만날 확률이 최소한 수백 배, 어쩌면 수십만 배에 달할 테니까.

그는 거의 연례로 중대발표 비슷한 것을 하곤 했는데, 최근 몇 년간 그의 발표는 정말 성공적이었다. 그를 반쯤 신격화 하는 두터운 팬 층을 제외하고도, 많은 사람들이 몇 개월 전부터 그가 이번에는 어떤 발표를 하게 될 것인가 기대하고, 궁금해 하며, 추측한다. 그럴싸 하게 추측만 잘 해도 신문 기사가 될 정도다.

이번에는 iOS 5 라는 것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많이들 추측했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iCloud 라는 것을 발표했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사람 저사람이 개 짖듯이 cloud cloud 거리는 것에 꽤나 식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필 iCloud 라는 것을 들고 나온 사실이 좀 못마땅했다. 반면 '스티브 잡스' 라는 존재가 'Cloud' 를 언급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해당 단어는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된다. - 당장 나부터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

오늘 얘기할 iOS5 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발표한 데다가, 아직 최종 사용자 용이 아닌 개발자용 버전이란다. iOS의 역사와 연혁에 대해서도 어딘가 잘 정리해 놓은 데가 필시 수백 군데 쯤은 있을 거다. 여기에 대해서도 간단히만 언급하자면, 핸드폰과 비슷한 부류의 기기에 사용되는 프로그램의 일종으로,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제품이다. 앞서서 잘 나가다가 iOS 한방에 사경을 헤매는 회사도 있고, iOS 흉내내기에 목숨을 건 회사는 수십 개 쯤은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유심히 신문기사를 읽다 보면 iOS와, 그것을 사용한 iPhone 이라는 기계는 세상에서 제일 문제점이 많은 기계로 보인다.

어찌된 일인지, 아직까지 일반인에게는 공개도 안 되고, 소수(?)의 '개발자' 라는 존재들에게만 공개되었다는 iOS5를, 내 주변에는 벌써 몇 명이 가지고 있다.

오늘은 잠깐 만지작 거리며 구경해 볼 기회가 있었다. 매끄럽게 손에 착 감기는 느낌, 뭔가를 강조하고 싶을 때 거슬리지 않게 슬그머니 시선을 끄는 기술,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에 그대로 호응하는 반응. 진짜 명품이다. 그냥 인터넷 주소창에 주소를 입력하기만 했을 뿐인데, 그 과정에서 쉬지 않고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인터넷에는 접속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소창을 클릭해서 화면상에 키보드를 꺼내고, 그 키보드의 모양을 이리 저리 바꾸어 보고, 글자를 몇 자 입력하고, 입력한 글자를 몇 자 긁어서 지우고, 뭐 그런 정도만 만져 봐도 기가 죽는다. 한참 성장하고 있다는 G사의 A제품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안그래도 G사의 A제품은 iOS를 베꼈니 마니 구설수가 많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번 iOS5는 A제품의 기능중 일부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서로 상당히 비슷해 졌다고 주장할 만도 한데, 일단 손과 눈에 와 닿는 느낌으로는 iOS의 압승이다.

가을쯤에는 일반 사용자에게도 iOS5가 공개된다고 한다. 그때쯤 G사의 A제품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 글에서 언급도 안된 M사의 W제품이나, R사의 B제품 등은... 그저 애도를 표할 뿐.)

다음번에 듣는 스티브 잡스 소식이 부고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란다. 젊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임에도 그가 여전히 우리에게 더 많은 환상을 보여주리라고 기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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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May 14, 2011

게임을 한다는 것

어린 시절, 선생님들은 '오락실' 이나 '만화가게' 같은 곳에 가면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으므로, '오락실' 이나 '만화가게'는 불량학생들이 우글거리는 소굴 같은 거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날, 전혀 불량하지 않은 옆집 사는 여자애가 오락실에 갔다 왔다고 자랑을 했다. 친척집이 오락실을 한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도 호기심이 불타올랐는데, 애한테 며칠에 걸쳐서 '킹콩' 과 '방구차'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끊임없는 설명을 듣고 나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시의 '킹콩'과 '방구차' 화면이다. '킹콩'의 정식 명칭은 'Crazy Kong' 이었고, '방구차'의 정식 명칭은 'New Rally X' 였다. 축소 같은 거 전혀 없이, 그대로 가져온 화면이다. 해상도(픽셀 수)가 요즘 나오는 핸드폰의 1/4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당시는 오락실에 컬러 화면보다 흑백 화면이 더 많았다. 흑백 화면에 색색가지 셀로판지를 붙여서 일종의 '가상 컬러'를 구현했다고나 할까......

동네 '문방구' 들에는 으례히 이런 오락기들이 몇 대 씩은 갖춰져 있었고, 한 판 하는데 50원 이었다. 물가 환산을 해 보면 지금 돈으로는 700원 가까이 될 것 같다. 돈이 없어서, 실제로 게임을 하는 시간보다는 구경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는데도, 나는 이 게임들에 미친듯이 빠져버렸다.

제일 자주 가던 문방구에는 페인트(Crush Roller), 갤럭시(Galaxian), 킹콩(Crazy Kong) 이 있었고, 그 옆 문방구에는 갤러그(Galaga), 땅굴파기(ZigZag) 그리고 두어 가지가 더 있었다. 가게마다 다른 오락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나는, 곧 걸어서 한 시간 내외 거리에 있는 모든 오락실을 다 돌아다니며, 어느 가게에는 어떤 기계가 있고, 화면 한구석이 잘려 보인다거나, 단추 하나가 잘 안 눌린다거나 하는 것까지 다 알게 되었다. '오락실'의 세계는 그렇게 흥미진진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되어, Personal Computer 라는 것이 보급되기 시작한다. 지금은 PC의 용도가 많이 달라졌지만, network 라는 존재가 민간인에게는 낯설기만 하던 당시, PC의 주 용도는 패키지 게임이었다.

당대의 명품 PC Apple ][, 역시 명작 Archon 과 LodeRunner.

나는 게임을 맘껏 해 보자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전공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는 거금을 들여서 나름 최신의 IBM-PC를 장만했고, 내 주변에 포착되는 모든 게임들을 섭렵했다. Ys(MSX에서 IBM PC로 이식된 것), 천사의 제국, 원숭이섬의 비밀 등. 대학때 했던 게임중 기록을 남긴 것만 400종이 훨씬 넘는다. (이 부분은 screenshot을 쉽게 뽑아낼 준비가 안 돼 있어서 아쉽다.)

운 좋게도 전공이 직업으로 이어져 프로그래밍을 생업으로 삼게 되었다. 처음 취직을 하고 몇 년 동안은 게임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 유명한 Starcraft로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지금은 몇 년째 주로 WOW를 하고 있다.


WOW 화면. 흔하지 않은 여자 드워프 이다.

WOW로 한 달에 지불하는 금액은 2만원 미만. 매달 지불하면 19800이고, 석 달 분을 한꺼번에 지불하면 47520 이던가... 거기에 컴퓨터 upgrade 비용을 일 년에 100만원 잡고, 굳이 WOW가 아니어도 직업상 3년에 한 번은 컴퓨터를 upgrade 할테니, 3년에 대충 200만원의 비용이라고 치면 한달에 7만5천 정도의 비용이 된다. 아.... 전기요금 만원 정도 추가. 인터넷은 굳이 WOW 안 해도 사용할테니 패스. 한 달 8만5천 정도에 거의 '무제한' 즐길 수 있는 취미생활이 또 있을까? '산책' 정도 외에는 불가능 할 것 같은데...... - 책 값이 하도 비싸서 '독서'도 만만치 않은 세상이니......

이렇게 게임은 내 인생에서 커다란 한 축이 되어 있다. 만약에 게임을 안 했다면 내 인생이 나아 졌을까? 현재와 무척 다를 거라는 부분은 확신할 수 있지만 현재보다 나을 지는 전혀 장담 못 하겠다.

이러한 게임이 요즘 '사회악' 취급을 받고 있다. 지능이 상당히 떨어져 보이는 어떤 여자는 게임을 하면 '짐승 뇌'가 된다며 악을 쓰고 있다. 그 여자 주장대로라면 어릴 때부터 게임을 인생의 낙으로 삼은 나 같은 사람은 지금쯤 희대의 사이코패스가 되어 연쇄 살인 세계 기록에라도 도전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뭐, 국가적으로는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아예 모든 외국 게임을 사실상 차단해 버렸다. 엄청난 시간과 비용과 수고를 들여 '사전심의'를 받아야만 우리 나라에서 '발표'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정도면 일단 발표되는 게임들은 모두 존경하고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세상의 모든 게이머와 게임 제작자들의 편에서 여성가족부를 규탄한다.

'당신들의 존재는 모니터 안에 있는 흰 곰 한 마리만큼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아. 내 피같은 돈을 뜯어다가 당신들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면 담즙이 역류하는 기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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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April 05, 2011

20년을 뛰어넘은 구글링

어린 시절에 운이 좋아서 computer 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8Bit Personal Computer. Apple ][. 요즘은 어디 가서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박물관 같은 데 가면 구경은 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인터넷을 뒤적이다 보면 목제 케이스로 만들어진 물건도 있던데, 내가 가졌던 것은 새끈한 플라스틱 케이스였다.

처음엔 Disk를 넣고 켜면 게임이 실행된다는 정도만 알고 사용을 시작했는데, 점점 PR#6 같은 것도 알게 되고, CALL-151 같은 것도 해 보게 되고......

Computer를 구입할 때,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그랬듯이 한 뭉치의 불법 복제 디스크를 함께 받았다. 빈 디스크 가격으로 구입을 했고, 그중 8 장에는 갖가지 프로그램들과 게임들이 들어있었다. 여담이지만, 그 중에 하나가 정말 디스크가 물리적으로 닳도록 사용한 Copy Program 이라는 것이었고, 그 프로그램은 같은 형태에 PCTOOLS 라는 이름으로 IBM-PC 에서도 한동안 매우 유용한 프로그램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머지 디스크의 내용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크리티칼, 캡틴 굿나잇, 로드런너, 플로피, 아콘 등의 게임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었던 DOS.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Copy Program 이라는 disk는 Pronto-DOS 라는 DOS를 사용해서 만들어져 있고, 제법 멋진 시작 프로그램까지 들어 있는 형태였다. 하지만 그냥 DOS 라고 써 있던 disk는 오리지날에 가까운 Apple DOS 3.3 이었다. 프로그래머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용한 시스템 도구들이겠지만, 엔드 유저, 특히 별도의 Copy Program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알 수 없는 내용물로 가득 찬 공간 낭비로 보였다. - 그래도 끝까지 그 disk를 format 해서 다른 용도로 쓰거나 하지는 않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게임이 분명한 다른 disk 들과, copy 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Copy Program으로 충분히 이것 저것 해 보고 난 다음에는 드디어 그 DOS 에도 관심을 한 번 주기로 했던 것 같다. 안에 들어 있는 program 들을 이것 저것 실행시켜 보았다. 지금 보면 제목만 봐도 뭘 하는 건지 대충 알 것 같은데, 그때는 도무지 뭐가 뭔지 몰랐으니, 그냥 한 번씩 실행 시켜 봤던 것 같다. 뭔가 보이는 결과가 나오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중 하나는 Graphic Demo 라고, 40x48 정도 되는 Low-res graphic 화면에 뭔가 만화경 같은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 같다. - 지금은 휴대폰 화면의 코딱지 만한 icon 하나도 저것 보다는 해상도가 높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 해 보려는 Music Demo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Apple ][ 에는 손쉽게 음악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신기하게도 음악을 들려 주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듣기에도 두 곡이 연달아 나오고 종료하는 걸로 보였다. 아니, 들렸다. 그 프로그램은 화면에 단 한 줄도 표시하지 않고, 소리만 내다가 종료했다.

나는 첫 번째 곡보다 두 번째 곡이 더 좋았는데, 첫 번째 곡을 건너 뛰고 두 번째 곡을 들을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첫 번째 곡부터 계속 듣곤 했던 것 같다.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나중에 알게 된 그 첫 번째 곡은 바로 이거였다.

바하 평균율 피아노 1-1. C장조
Vintage Bach Well-Tempered Clavier, Book I, Prelude 1 in C
http://www.youtube.com/watch?v=DAZ8KNsZSCg

뭐, 이런 우아한 피아노 소리가 났을 리는 전혀 없고, 흑백 전화기 시절 전화올 때 울려퍼지는 밀양아리랑 톤으로 위 음악이 나왔다고 생각하면 딱 맞다.

두 번째 곡은, 첫 번째 곡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인데 도무지 어떤 곡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의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막상 누군가에게 물어 보려고 해도, 일단 내 컴퓨터 앞으로 데려 와서, 짧지 않은 앞의 곡을 다 들을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물어 볼 수 있으니, 그 자체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 후로 20년이 넘게 흘렀다. 그러다가 근래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런 동영상을 접하게 됐다.

http://humor.hani.co.kr/board/view.html?uid=41206&cline=3&board_id=h_humor&sk=%BF%A2%BC%BF&so=T

계산 프로그램인 엑셀로 그림을 그려내는 독특한 영상인데, 30초쯤 지난 후부터는 화면이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저 배경음악이 바로 내가 어릴 때 궁금했던 그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배경음악이 뭐냐고 댓글을 달긴 했는데, 원래 위 사이트는 인기도 별로 없고, 댓글도 별로 없는 사이트다. 예상했던 대로 답변도 없었다. 그래서 위 동영상을 실제 호스팅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다음 쪽으로 들어가서, 해당 동영상에 또 질문을 붙였다. 이거 배경 음악 뭔지 아냐고. 그 후로 십여 개의 댓글이 달리긴 했지만, 그 누구도 내 질문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지금은 무슨 이유에선지 내 댓글 자체가 아예 삭제된 것 같다. 누군가의 명예 또는 저작권을 침해했거나, 미풍양속을 심히 저해했거나, 아니면 직원이 실수를 했거나...... OTL.....

좌절하고, 한 동안 잊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떠올랐다. 우리나라 동영상 사이트에 있는 컨텐츠의 대부분은 그냥 유튜브에서 퍼오는 거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나라 에서는 엑셀로 저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 있다면 벌써 '네임드'가 되어 있겠지. 이 두 가지를 연결 해 보면, 위 동영상은 원본이 유튜브일 확률이 높다는 추측이 가능했다.

역시 바로 나왔다. 백만 뷰 이상. 국내 사이트 것들 보다 화질도 좋고, 음질도 좋고.
http://www.youtube.com/watch?v=4YG_WWZYqUs

다행히 여기 댓글에도 누군가는 배경 음악이 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었고, 더 다행히 답도 있었다.

Solfreludio, Delta.

라는 짤막한 답변.
Delta 라는 그룹의 Solfreludio 라는 곡이란다. Delta 라는 이름값 덕분에 인터넷을 검색하면 대부분 델타 항공이 먼저 나온다. 그다지 유명한 그룹은 아닌 것 같다. 또, 저 곡도 그다지 유명한 곡은 아닌 것 같다. 검색해 보니 이런 링크가 나온다.

http://www.youtube.com/watch?v=THhoqGpWB-g

어쩐지 음의 진행이 클래식한 느낌이더니, Bach 의 Solfeggietto 에서 따왔구나. 그러고 보니, 이 음의 진행은 상당히 바하스럽다. 2성 invention 이나 평균율 피아노 등에서 느낀 것과 비슷하게 전개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비슷한 느낌인데 왜 어릴때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고 생각했을까.

내친 김에 Bach의 Solfeggietto를 검색해 봤다. 피아노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미칠 것 같은 빠르기로 연주하는 동영상이 대부분이다. 그중 이 영상이 그나마 예전 느낌과 제일 비슷한 것 같다.

http://www.youtube.com/watch?v=wqmwlzEBFfI&feature=related

작곡자는 CPE Bach 란다. 하긴, Bach 가문은 음악가 가문이라서 제일 유명한 J.S. Bach 말고도 많다고 했었지. 이번엔 위키피디아를 뒤졌다.

http://en.wikipedia.org/wiki/Bach_family

아예 '패밀리'로 계셔 주신다. Carl Philipp Emanuel Bach 는 Johann Sebastian Bach 의 둘째 아들 쯤 되시는 분인 것 같다.

Solfeggietto로 표시한 데도 있고, Solfeggio 로 표시한 데도 있다. 어쨌든, 이것 저것 들어 본다. 피아노 버전. 기타 버전. 오르간 버전. 락 편곡. 재즈 편곡. 그리고 앞서 나왔던 Delta의 Solfreludio.

어렸을 때, 피아노 치던 사촌누나에게 물어봤으면 아마 바로 답이 나왔을 것 같다.

역시 인터넷의 세계는 신기하다. 내가 찾던 그 무언가가 어딘가에는 있고, 찾으면 찾아 진다. 하지만 광고의 바다 인터넷에서 원하는 것을 찾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 - 그래도 없는 것보단 훨씬 좋지 아니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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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pril 02, 2011

빈말

신문에서 이런 기사가 눈에 띄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4011545251&code=920100

이 링크가 얼마 동안이나 살아 있을 지 모르니 내용을 간추려 보자면, 알바생들이 선정한 사장님의 거짓말 순위. 1위, 다음에 꼭 놀러와. 그 다음부터 차례로 알바비 곧 올려줄게. 그동안 수고했어. 알바비 곧 줄게. 이번까지만 고생하자. 이달 매출이 적어. 열심히 하면 직원으로 뽑아줄게. 알바생 더 뽑아줄게, 조금만 참아. 담엔 보너스 더 줄게. 반대로 알바생들이 하는 거짓말은 1위가 오래 일할게요. 그 다음부터는 힘들어도 괜찮아요. 열심히 할게요. 몸이 좀 안좋아요. 집에 급한 일이 있어요. 차가 너무 막혀서요. 사장님이 최고예요. 제가 안 그랬는데요. -_-;

척 들어 봐도 그냥 '아... 이건 아니구나....' 싶은 말이 꽤 많은 것 같다. 법이 정한 최저임금도 채 못 받는 일이 당연시 되는 알바들과, 뭐든지 다 지들이 하려는 대기업 틈에서 피가 마르는 점주들 입장에도 나름 어려움이 있긴 하겠지만, 정말 비겁한 거짓말들이다.

그런데, 사장님의 거짓말 중 1위인 '다음에 꼭 놀러와'. 이건 좀 의외다. '진심' 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위에 열거된 다른 대사들에 비하면 '선의의 거짓말'에 가깝지 않은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 대사가 1위가 된 것일까?

어린 시절에, 모 학원에 잠시 다닌 적이 있었다. 소정의 과정을 수료하고 나서, 마음 좋아 보이는 원장님이 바로 저 대사를 했다. 어린 마음에도 '내가 학원에 놀러 올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길에서 그분을 다시 마주치게 됐는데, 다시 '언제 한 번 꼭 놀러 와' 라고 하시는 것 아닌가. 난 혼란스러웠다. 어른들 말씀을 잘 듣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한 어린 시절이었기에, 내가 놀러 가지 않아서 저분이 서운하셨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며칠 뒤, 짬을 내서, 정말로 학원에 놀러 갔다. '응? 웬일이니?' 하는 좀 당황한 듯한 원장님. '아... 언제 한 번 몰러 오라고 하셔서.....' 소정의 과정을 마치면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학원의 속성상, 아는 원생들도 단 한 명도 없고, 불행히 그 전에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도 안 계신 것 같았다. 단 한 명 아는 사람, 그리고 나를 '초대' 한 것으로 되어있는 그분은 내 등장에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고, 나는 그제서야 내가 들었던 말들이 아무런 내용도 알맹이도 없는 '빈말' 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앉아서 차를 한 잔 마셨는지, 학원 차를 타고 왔는지, 아니면 걸어 왔는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아무런 기억도 남아 있지 않은데, 눈이 휘둥그래진 채 당황하던 원장님 모습만 생생하다.


한 번 더 그 비슷한 추억이 있다. 친한 친구 한 녀석이 있는데, 전화로 무슨 얘기를 한 끝에 '이따가 내가 전화 할게' 라고 하는 것이었다. 당시는 상위 1% 중에서도 휴대전화를 가진 사람은 극소수였던 때였고, 나는 온 종일 전화기 옆에 앉아 전화를 기다렸던 것 같다. 하지만, 뻔히 예상할 수 있듯이 전화는 오지 않았고, 밤 쯤이 되어서인가, 나 역시 '얘가 잊어버렸나보다' 하면서 포기했던 것 같다.

그 후로 두세 번인가 그런 일이 더 있었다. 딱히 할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은 아니기에, 왜 전화 하지 않았냐고 따져 묻기도 좀 이상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그런 일들이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고, 어느 날은 드디어 그 친구가 '이따가 내가 전화 할게' 라고 할 때, '언제?' 라고 묻고 말았다. '응?' 수화기 구멍으로 그 친구의 당황이 줄줄 흘러 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우울하게도 또다시 '유레카' 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친구에게 있어서 '이따가 전화 할게' 는 그냥 '잘있어' 와 비슷한 인사말이 었던 거다. 전화를 걸 때엔 '안녕하세요' 하지 않고 '여보세요' 하듯이, 전화를 끊을 때에는 '잘있어' 나, '잘가'나, 그런 말 대신 그냥 '이따가 또 전화 할게' 였던 것이었다.

힘든 학습을 한 나는, 그 친구의 '이따가 전화 할게' 에 더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확인 해 보고 바로 전화 줄게' 라던지, '7시 경에 일 마치면 전화 할게' 처럼, 확실히 인사말이 아닌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아니면 그냥 '빠이~' 라고 번역해서 이해하게 된다.


근래엔 이런 일도 있었다. 전 직장에서 반 년 가까이 같이 협업을 한 직원이 있었다. 다른 회사로 파견 나가서, 단 둘이서만 같이 일을 한 셈이고, 협업이 꽤 잘 된 것 같다. 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 몰라도, 인간으로서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된다.

직장을 옮기고 나서, 그 직원 입장에서도 안좋은 회사에 계속 다니느니, 우리 회사로 옮겨서, 계속 같이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언제 한 번 만나서 저녁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연락을 했었다. '제가 다음 주쯤에 시간 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연락은 없었고, 한 달쯤 뒤에 내가 다시 연락을 했던 것 같다. 그때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고, 그 이후로는 서로 연락이 없는 상태다.

그러다가 근래에 이런 신문 기사를 봤다. 분명 요 근래 본 것 같은데, 인터넷 검색으로는 2007년 기사밖에 안 나온다.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2&total_id=2958185

이런...... 내가 한 말은 비록 진심이었어도, '가장 흔한 거짓말 1등!' 이었던 거다. 왠지 서글펐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은 그 뜻을 전혀 다르게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시간 내서 저녁 한 번 같이 먹자' 는 그에게 '안녕히 계세요' 로 번역되었고, 그는 나에게 '다음 주쯤 시간 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라는 형식으로 '안녕히 계세요' 라는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마치 외국인이 된 듯한 느낌이다. 사전에는 이러이러한 뜻인데, 관용적으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는, 타 문화권의 의사 소통 장벽에 걸린 듯한 느낌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대로 계속 가면 언젠가는 번역기조차 '언제 밥 한 번 먹자'를 'Good-bye'로 번역하게 될까? 현재 구글의 번역기는 이도 저도 아닌 생뚱맞은 답을 내 놓고 있긴 하다.
http://translate.google.com/#ko|en|%EC%96%B8%EC%A0%9C%20%EB%B0%A5%20%ED%95%9C%20%EB%B2%88%20%EB%A8%B9%EC%9E%90.%0A
'You eat rice once.' 라니.

여기에 내가 쓴 글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뜻으로 읽힐까. 아니, 과연 읽히기나 하는 걸까?
=^.^=

Wednesday, March 02, 2011

약간 늦은 새해(?) 목표

작년 6월 경에 한 회사에 입사를 했다.

다시는 IT 같은 것 하지 않겠다며, 잘 다니던 제법 좋은 직장을 때려 치우고 나와서는, 고작 일 년도 안 돼서 다시 그바닥으로 돌아가냐는 지인들의 비웃음을 감수하고서라도 당장 '직장' 이란 것이 필요한 이유가 생겨 버렸던 것이다. 그것도 서울 쪽의 지역이여야만 했다.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작은 회사라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 회사는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회사들이 얼마나 좋은 회사들이었는지 새록 새록 느끼게 해 주었다. 회사 운영이 내가 보기에도 어설퍼 보일 정도였고, 직원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이 인원이 다 함께 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는 사장의 발언도 있었다고 한다. - 공식 발언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개연성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처음 두어 주일 간은 사무실에서 거의 빈둥거리다시피 했다. 생전 처음으로 Android 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데, 뭔가 가르쳐 주거나 하는 것도 없이 알아서 책을 사서, 알아서 공부를 해서, 세미나 해 가면서 진행하잔다. 그런 거야, 월급 받으면서 하기엔 미안할 만큼 어설픈 일이지만, 그래가지고 언제 상용화 프로젝트를 진행할 만한 실력이 될까......

문제는, 그 두세 주일 후에, 회사에서 뭔가 프로젝트를 따내자 발생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인력들을 바로 상용화 프로젝트에 투입한 것이다. 그것도, 어떤 일을 어떤 조건으로 언제까지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그냥 갑자기 '내일부터 가산동으로 출근하세요' 라며 어딘가에서 빌려온 노트북을 던져줬다.

한 눈에 보기에도 여러 사람의 손을 타며 꽤 낡은 노트북이었다. 화면 해상도도 상당히 낮았다. 진행하려는 프로젝트가 480x800 의 해상도였는데, 그 노트북은 세로 해상도가 800이 안되었다. (오래 되어 정확한 해상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Emulator 작업이 애시당초 불가능 한 환경이다. 함께 딸려온 마우스는 얼마나 닳고 닳았는지, 휠이 제대로 구르질 않는다.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이런 걸로 일을 하라고????

바로 다음 날부터 계속 가산동의 L 사로 출근했다. 이전에 Sun을 다녔을 때의 안좋은 기억이 떠올랐지만, 한번 때려 쳤던 거, 여차 하면 또 때려 치지 뭐 하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L사의 팀원들이 무척 잘 해 주었고, 운도 좀 따라 주어서인지 해당 프로젝트는 그럭 저럭 잘 마무리가 된 것 같다. 물론, 내가 다녔던 회사 사람들이나 L사 분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다. 거의 막바지에 내가 그만둬 버렸으니까.

L 사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그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다만, 그쪽 사람들은 날마다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는 사실. 도대체 왜 그러고 사는 지 모르겠다. 자살하거나 쓰러지는 사람이 없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내가 그만둔다고, 대체 인력을 투입하라고 그렇게 여러 번 얘기를 했음에도 무관심 하다시피 한 반응을 보여서 결국 내 일정을 빵꾸냈고, 나는 L사쪽 분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상당한 개인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렇게 하는 게 옳았는지, 아니면 그냥 약속된 날짜에 칼같이 끊어 버리는 게 옳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피곤하고 우울하고 대책없는 회사를 떠나서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했다. 예전 직장에서 알던 분이 소개를 해 줬다. 똑 같이 작은 기업이고, 거의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이긴 한데, 기술력 있는 좋은 회사란다.

지금의 회사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첫 직장부터 밤샘이 미덕인 회사들만 전전하는 내 편견으론 도대체 어떻게 운영이 되지 싶도록 일찍 퇴근할 수 있다. 9시반 - 6시반이 공식 업무 시간인데, 7시쯤 되면 대부분이 퇴근한다. 근무한 두 달 동안 밤 9시를 넘겨 퇴근한 적은 딱 두 번 뿐이다.

회사에서 새해를 맞아, 업무와 관계 없는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라고 했다. 리코더? 와우? 등산? 독서? 이것 저것 많이 떠올랐지만, 두 가지로 압축했다. 체중감량. Blog에 글 쓰기.

일단 상반기에 체중을 72kg 미만으로 줄이고, 한달에 두 개 꼴로 글을 쓰기로 했는데, 아무 일도 안 하고 2월이 지나가 버렸다. 3월부턴 독서 블로그에도 꾸준히 글을 쓰고, 운동도 좀 해야 겠다. 별로 터프하지도 않은 이정도 목표조차 달성하지 못하면 안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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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February 21, 2010

소음의 저주

나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 시끄러운 음악도 듣기는 하지만, 주로 조용한 음악을 듣고, 그나마도 많이 듣는 편도 아니다. 그래서 보통은 내 방에서는 게임을 하는 소리 아니면 컴퓨터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 정도 밖에는 나지 않는다. 지금처럼 글을 쓸 때는 키보드 소리 정도.

그런데, 집 밖으로 나가면 온갖 소음의 폭격을 받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나 요즘은 저주라도 받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하다.

버스를 탔다. 우리집은 종점 부근이기때문에 항상 거의 비어 있다. 그래서 편한 자리에 앉는다. 몇 정거장 지나면서 사람이 가득 탄다. 그중에 유독 전화기를 입에 문 목소리 큰 여인이 바로 내 뒤에 앉거나, 바로 내 옆에 선다. 반대편 종점까지 가는 30여 분의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살인충동이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전자파 차폐 버스를 만든다면 추가 요금을 내고라도 탈 용의가 있다. 핸드폰 요금을 2배쯤 올린다면 미친듯이 반대하겠지만(그 여자들은 이정도엔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오히려 20배쯤 올린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싶다(이정도로 불충분할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은 든다. -_-;).

가끔씩 떠드는 사람이 없다 싶을 때엔 운전기사가 뽕짝을 튼다. 내지는 교통방송을 튼다. 충분히 혼자 들을 수 있음에도 전체 차내에 틀어대는 것은 혹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가?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아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버스 같은 환경에서 듣고 싶지는 않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탄다. 잡상인이 온다. 큰 소리로 오디오를 틀어 놓고 판다. 경찰을 불러 잡아들이라고 하고 싶다.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잘 안 팔리는듯, 차 안을 두세 바퀴 돌며 상품을 사람들 얼굴에 들이밀어 본다. 그동안 오디오는 계속 소음을 펑펑 뿜어 댄다. 이런 사람 신고해서 포상금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겨우 오디오 아저씨가 가면, 다른 잡상인이 온다. 아무리 먹고 살려고 그런다지만, 사람 많은 차안에서 확성기까지 동원해서 떠들어 대는 인간을 보면, 먹고 살려고 하는 소박한(?) 도둑질은 인정해 줘야 하는 건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특히나 바람잡이까지 동원해서 정체불명의 치약을 파는 것들은 사회에서 격리좀 시켜야 하지 않을까.

잠시만 틈이 나면 이번엔 구걸하는 가짜 장님이 온다. 진짜 장님을 보고 따라 하기라도 잘 하던지, 지팡이질 하나에도 가짜임이 역력히 묻어나는 거지들이다. 이런 인간들은 따로 병원으로 모셔가 안구를 적출해 필요한 사람에게 이식해 줬으면 한다. 어차피 장님 행세 하며 구걸질이나 할 사람들에게 눈이 뭐가 필요하단 말인가. 더 나쁜 것은, 오디오 장사꾼보다 훨씬 듣기 싫은 축축 쳐지고 신경 거슬리는 음악을 틀면서 다닌다는 것이다.

갖가지 잡상인과 거지들이 지나가고, 잠시 조용한 순간이 찾아오나 싶으면 전철 안에 꼭 한두 명씩 전화기를 물고 있는 여자들이 있다. 가끔은 남자도 있지만, 경험상 여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한 칸에 딱 한 명이 떠들면 그 사람은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심지어는 딱 두 명이 떠들고 있는데, 하필 내 왼쪽과 오른쪽에 앉은 사람들이었다.

가끔씩은 옆자리 사람의 이어폰 음악소리가 너무 커서 내가 다 시끄럽기도 하다. 그럴 때는 소리좀 줄여 달라고 요청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은 줄여 준다. 하지만 딱 한 칸 줄이는 것이 그대로 느껴지는 사람도 없지 않다. 랍스터 파먹는 송곳으로 귀를 쑤셔주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참는다. 계속 그러고 다니면 그인간은 조만간 청각장애가 올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결정타로, 아파트 윗집이 피아노를 샀다. ㅜ.ㅜ
도대체 무슨 저주를 받았는지, 낮에는 전혀 손도 안 대는 피아노를 꼭 아침 일찍 친다. 그것도 내가 일어날 시간의 딱 한시간쯤 전에. 들으면 도저히 잠들 수 없는 신경 거슬리는 실력(쉬운 동요 틀려가며 겨우 치는 수준)으로.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시달림을 당해야 하는 걸까. 살풀이를 할까, 푸닥거리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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